[주철환의즐거운천자문] 탁월한 매니저가 더 탁월한 스타를 키우는 법이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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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잘 먹고 잘 살아라. 이 말을 덕담으로 받아들이기 망설여지는 까닭이 있다. 듣고 난 뒤 평생 얼굴을 안 마주치는 경우가 더러 생기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잘 먹고 잘 살려면 부지런히 관리해야 한다. 시간.건강.재산.고객.이미지, 관리 대상종목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스스로 관리하기 어려울 때 방법은 하나. 유능한 관리자를 곁에 두면 된다.

각양각색의 매니저가 연예계엔 존재한다. 스타의 둥지라고 할 수 있는 기획사의 유형도 천차만별이다. 그곳이 좋은 '서식지'였는지는 새가 떠날 때 가늠하는 게 낫다. 날지도 못하는 새를 내팽개치는가 하면 둥지를 발로 걷어차고 비상하는 큰 새도 있다. 이별을 아쉬워하며 서로 잘되기를 바라는 모습은 흐뭇하지만 악담을 퍼부으며 낯을 붉히는 장면은 볼썽사납다. 소송으로 이어지는 일도 드물지 않다.

기억에 남는 매니저가 있다. 고인이 된 배병수씨다. 그는 1990년대 초 탤런트 최진실의 매니저로 여의도를 활보했다. 안목과 수완이 대단했다. 하지만 많은 PD에게 칭찬보다 욕을 더 먹었다. 나긋나긋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원칙은 있었다. 자신이 데리고(모시고) 있는 연예인을 확실하게 보호했다. 보디가드를 잘했다는 게 아니다. 그는 스타의 스타성을 낭비하지 않았다. 클 수 있는 곳이 아니면 스타를 결코 내주지 않았다.

스타성을 키워주는 게 아니라 스타의식만 길러주는 매니저가 많았던 시절이다. 그는 자신이 보유한 스타를 흠집 내는 대신 오히려 악역을 자처했다. 설익은 매니저 중에는 소속된 연예인을 험담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이런 매니저를 둔 연예인의 미래는 고단하고 험난하다.

스타의 매니저는 스타의 CSI를 관리하는 전문가다. 캐릭터(C)와 스타일(S), 이미지(I)의 고양을 책임진다. 근래 주목받는 매니저 겸 프로듀서는 박진영이다. 가수 비가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뽑힌 배경엔 대중음악의 큰 흐름을 읽어내는 박진영의 탁월한 매니지먼트가 있었다. 주먹구구식이나 완력으로 되는 시대가 아니다. 비가 떠나도 잘 크도록 돕겠다는 그 고백이 진심이라면 그는 이른바 교육 마인드를 지닌 멘토형 매니저다. 돈이 전부는 아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사는 동네에서도 미다스의 손은 여전히 위험하다. 사랑하는 사람마저 황금으로 만들어 죽이고는 때늦은 후회를 한다.

알려져 있다시피 비는 한때 박진영의 백댄서였다. 박진영 역시 김건모의 백댄서 출신이다. 백댄서의 경험은 수학에서 미적분을 풀기 전에 인수분해를 미리 공부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다. 그림자가 되어본 사람은 남의 그림자를 함부로 밟지 않는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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