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장인의 손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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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24면

S#1-모자, 미셸(Michel)

겨울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파리 시내에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다. 2007년 3월 6일 모자를 만드는 샤넬의 공방 ‘미셸’에 들어서자 마음씨 좋은 중년의 프랑스 여인이 나타났다. 모자를 만드는 ‘샤플리에’였다. 파리 시내 한복판, 아름다운 유럽식 옛 건물에 들어섰다는 것만 빼면 동대문시장 골목 안 작업실과 별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모자 가게 ‘미셸’의 첫인상이었다. 작업용 흰 가운을 입은 프랑스 여인이 설명을 시작하자 이내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른 점은 이거군’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자를 맞출 고객들은 그 모자를 갖춰 쓸 옷을 입고 주문 상담을 하러 옵니다.”
‘무슨 모자 하나 맞추는 데 그리 수선을 떠나’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 그가 말했다. “어떤 날, 무슨 옷을 입고 모자를 쓸 것인지 알아야 분위기에 맞는 모자를 만들어 드리죠. 손님이 원하는 스타일도 물어보고, 소재도 직접 고르고, 고객이 말로 설명하는 걸 디자인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에요.”

S#2-깃털 공예, 르마리에(Lemarie´)

파란색ㆍ노란색으로 물든 깃털이 나풀거리는 무대 의상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문제의 옷’은 샤넬의 깃털 공예 공방인 ‘르마리에’ 작업실 한쪽에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싸구려 의상 대여점의 소품처럼 걸려 있었다. 작업하던 장인에게 묻자 그 옷은 “아랍의 한 왕자가 자신의 ‘특별한 날’을 위해 주문한 것”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대수롭지 않아 보였는데 “수천만원짜리 파티복”이란다. 만져보니 촉감이 달랐다. “타조 깃털을 일일이 잘라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 “깃털 하나에서 옷에 쓸 수 있는 것은 부드럽고 길이가 비슷한 일부분뿐”이라고 말한 그들은 “손으로 자르고 직접 풀로 붙여 만든다”고 했다.

S#3-액세서리, 데뤼(Desrues)

타조 깃털을 하나씩 골라 풀로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공방 ‘르마리에’의 장인.

프랑스 파리 시내에서 1시간쯤 떨어진 우와즈 지방의 플라이유. 샤넬의 공방 ‘데뤼’는 ‘공방’이라기보다는 중소기업의 생산공장처럼 보였다. 1929년 조르주 데뤼가 세운 이 공방은 발전을 거듭해 현재는 160여 명의 기술자가 온갖 종류의 액세서리를 만들어내는 대규모 공방으로 변신해 있었다. 작업장 안으로 들어서자 공방다운 모습이 펼쳐졌다.

브로치를 만드는 작업대. 불길 위에서 빨갛게 달궈지는 금속으로 된 브로치 틀 위로 장인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색깔이 선명한 긴 유리막대를 불길 위의 틀에 가져가더니 순식간에 녹여 붙였다. “일반적으론 구슬 같은 것을 본드로 붙이거나 틀에 끼우지만 우린 직접 녹여 붙인다”고 설명하는 장인의 얼굴에서 대단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작업대 뒤로 수만 개는 됨직한 색색의 유리막대가 변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옆 작업실에서는 벨트의 버클 부분에 광택을 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광을 내는 기계는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지만 장인은 신중했다. 균일하게 작업이 됐는지, 강조해야 할 곳의 빛 반사까지 하나하나 확인하는 모습이 진정한 명품의 탄생을 기대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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