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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속으로 풍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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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24면

왼쪽부터 샤넬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트위드로 만든 코트, 원피스 같은 느낌의 빨간색 루이뷔통 코트, 아르마니의 볼레로 재킷과 스커트.

young CHANEL

3월 2일 프랑스 파리는 오랜만에 화창한 햇살로 가득했지만 그랑 팔레에는 눈이 내렸다. 그랑 팔레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에펠탑 등과 함께 건축된 파리의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 그랑 팔레의 유리 돔 아래로 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내 쇼가 시작되니 조용하지 못해’라고 소리치듯 갑작스러운 음악소리와 함께 모델들을 눈밭으로 내몰았다. 프레야 베하 에릭센은 긴 머리를 편하게 풀어헤친 채 붉은색과 검은색이 섞인 트위드 투피스를 입고 나왔다. 재킷 앞섶은 풀어헤치고 안에 입은 푸른색 블라우스도 재킷 밑단 아래로 늘어뜨렸다. 밝고 경쾌한 것은 색감뿐만 아니라 헤어스타일과 옷을 입은 모양새까지 모두였다. 이어진 60여 벌의 옷도 마찬가지.

파리에선 지금 대학생에 어울릴 법한 거리 패션이 화제다. 이런 경향을 반영하듯 2007~2008 샤넬의 가을ㆍ겨울 컬렉션은 색감에서 눈에 띄는 변화를 보였다. 하지만 샤넬 고유의 화사하면서도 단정한 실루엣ㆍ색상이 특징인 트위드 정장의 기본은 그대로 간직한 채였다. 색상은 기존의 검은색ㆍ흰색ㆍ핑크색의 조화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빨간색과 노란색, 밝은 푸른빛의 푸크시아 색이 쓰이면서 한층 어리고 귀여운 느낌을 줬다. 스커트나 재킷의 끝부분 실을 마무리하지 않아 빈티지 느낌을 살린 것도 또 하나의 특징이었다.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이 촘촘히 장식돼 있는 아르마니의 쉬스드레스.

colorful LOUIS VUITTON

파리의 또 다른 명소에서 펼쳐진 루이뷔통의 패션쇼도 다채로운 색으로 주목 받았다. 루브르 궁(宮) 뜰에 설치된 천막 무대는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가 빚어낸 형형색색의 옷과 가방들이 줄지어 선을 보였다.

패션 모델 소피 베렐리제는 짙은 올리브색의 터틀넥 스웨터와 황동색의 치마를 입고 등장해 2007~2008 가을ㆍ겨울 루이뷔통 패션쇼의 시작을 알렸다. 무릎을 덮는 길이의 스커트는 모직으로 된 천의 표면을 코팅한 듯 반짝임을 줘 더욱 산뜻해 보였다.

이날 루이뷔통은 50여 벌의 의상을 선보였는데 대부분의 작품에 각기 다른 형태의 가방도 함께 내놨다. 전통적인 루이뷔통의 로고와 문양은 변함없었지만 다양한 변주가 시도됐다. 백의 모서리 부분에는 다양한 길이와 느낌의 모피가 장식된 것이 눈에 띄었다. 게다가 색감은 더욱 풍부해져 루이뷔통의 짙은 고동색 가죽 바탕에 더 깊은 자주색으로 테두리를 한 것도 보였다. 가죽 표면을 열처리해 플라스틱처럼 코팅한 것을 이번 시즌에도 내놓았는데 이전보다 더 가짓수가 많아진 듯했다. 가죽 가방의 특성상 물에 약한 것을 고려한 듯했다.

의상의 실루엣은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이 많았고 몸매의 윤곽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편안하고 조금은 넉넉하게 감싸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엉덩이 뒷부분에 주름을 많이 넣고 스커트의 앞단보다 뒷단이 더 길게 처리된 검은색 원피스도 있었다. 드레스가 아닌 소녀들의 소풍용 원피스처럼 보였지만 뒷부분 주름이 드레스의 느낌을 살려 조금 더 성숙한 차림새로 느껴졌다. 색상은 가을ㆍ겨울의 대표색인 검정과 회색 등도 많았지만 밝은 주황이나 노랑, 하늘색 등도 눈에 띄었다.
 
glamorous ARMANI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심기가 불편한 듯 보였다. 올해로 33년째 디자이너의 길을 걷고 있는 베테랑에게도, 존재만으로도 현대 패션에 가치를 더하는 거장에게도 새 작품을 발표하는 무대는 늘 긴장되기 때문일까.

2월 19일 밀라노시(市) 외곽 베르고뇨네 가(街)에 있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그룹의 본사. 유명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지은 패션쇼장 ‘아르마니 테아트르’에 팔짱을 낀 채 심란한 얼굴을 한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나타났다. 2007~2008 가을ㆍ겨울 여성복 컬렉션이 예정된 오후 3시 무렵이었다. 런웨이 입구에서 서성이던 그는 자못 심각한 얼굴로 연방 시계를 쳐다보며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명 해외 컬렉션은 대개 1주일 동안 열린다. 이 기간 뉴욕ㆍ파리ㆍ밀라노에서 열리는 패션쇼는 도시마다 100개가량. 하루 평균 10개 이상의 패션쇼가 열린다. 그날의 첫 번째 스케줄로 잡혀 있는 한 패션쇼의 시작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뒤이은 쇼는 어쩔 도리 없이 순연된다. 직전 쇼를 보고 오는 손님들을 기다릴 수밖에 없기 때문.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예정된 시간보다 30분쯤 늦게 시작하는 것은 애교로 여겨질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비교적 제 시간에 자신의 쇼를 시작했었다.

자신의 쇼장이 대부분의 패션쇼가 열리는 밀라노 시내에서 자동차로 30~40분은 족히 걸리는 외곽지역임에도 그래왔다.

이전 패션쇼 일정 지연과 시내에서 먼 지역적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30여 분이 지나 관객들이 쇼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금세 자리를 잡았다. 아르마니는 ‘나도 참을 만큼 참고 기다려 주었다’는 듯 재빨리 불을 끄고 쇼가 시작됨을 알렸다.
첫 무대는 모델 안나 라이가 장식했다. 회색 계열 무릎 위 길이의 스커트와 옅은 점토색의 재킷이 조화를 이뤘다. 머리에 쓰고 나온 망사로 만든 모자는 반짝였지만 다른 장식은 전혀 없었고, 머리 모양을 그대로 나타내줄 만큼 온전히 머리를 감싸 다른 어떤 헤어스타일보다 단정해 보였다. 어깨에 두른 모피 소재의 숄은 선 굵은 고동색의 가로 줄무늬가 살아 있어 자칫 지루해 보일 수 있는 투피스 차림에 잘 어울렸다.
아르마니가 쇼의 첫 번째 의상에서 소개한 망사 모자는 이날 선보인 총 76벌의 옷 모두에 매치됐다.

2년 전 아르마니는 조르지오 아르마니보다 연령ㆍ가격대가 모두 낮은 엠포리오 아르마니 브랜드의 컬렉션에서 스커트를 대거 선보이면서 주목 받은 바 있다. 그가 지금까지 전면에 내세웠던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의 바지 정장보다 치마가 눈에 띄게 됨에 따라 당시 패션계는 ‘아르마니가 스커트와 사랑에 빠졌다’며 놀라워했을 정도였다.
이런 변화의 흐름은 올해도 이어졌다. 바지를 입고 런웨이에 등장한 모델은 단 여섯 명뿐이었다. 이들에게 입혀진 바지도 아르마니가 좋아했던 정장류가 아닌 레깅스처럼 보이는 스판덱스 같았고 편안한 느낌의 코트와 어울렸다.

이번 시즌 아르마니가 중점을 둔 스커트류는 다양하게 전개됐지만 ‘풍성한 실루엣’이라는 점에선 같았다.

후반에 선보인 드레스류는 바지 아닌 치마에 중점을 둔 아르마니가 ‘화려한 여성이 아름답다’를 주제로 이번 시즌을 기획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어깨를 시원하게 드러낸 까만색의 미니 드레스에는 수십 마리의 나비가 날아든 듯한 형상의 모직 숄이 어우러져 화려하고 우아하게 보였다.

화려함의 방점은 이날 무대의 피날레를 장식한 패션 모델 밀라그로스 슈몰이 찍었다. 바닥에 끌리는 긴 쉬스 드레스에는 아래로 갈수록 크기가 커지는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이 촘촘히 장식돼 카메라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쉼 없이 반짝거렸다. 머리카락은 모자 속으로 단정하게 감추고 짙은 색으로 눈화장을 한 슈몰의 얼굴은 근엄해 보였지만 수많은 크리스털 덕에 여성적인 아름다움도 함께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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