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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뽐내는 통일 독일의 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호 05면

한스 하케가 동서독 각지에서 모은 흙과 식물로 국회의사당 안마당에 꾸민 39독일 인구에게39

독일의 봄은 몹시 더디게 온다. 베를린 시내를 휘감는 싸한 바람이 뼛속으로 파고든다. 베를린의 상징 중 하나인 전승기념탑을 지나 찾아간 국회의사당 앞은 쌀쌀한 날씨에도 사람 줄이 늘어섰다. 손님인 외국 관광객보다 전국에서 찾아온 토박이 주인이 더 많아 보인다. “게나우! (맞아, 바로 그거야)”로 맞장구치며 얘기에 열중하는 독일 사람들의 열기가 추위를 녹인다. 통일 독일을 이끌어 가는 핵심 공간을 사랑하는 그들의 훈훈한 마음이 멀리 분단국에서 온 이방인을 감싸안는다.

입구를 지나 들어서니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회의장이다. 투명 유리로 벽을 마감해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국민 누구나 와서 정치판의 증인이 되고 참여자가 되기를 의도한 설계다. 95년부터 99년까지 국회의사당을 리노베이션한 건축가 노먼 포스터는 이 투명 유리를 건물 꼭대기 회오리 치는 둥근 돔으로 연결해 굴곡 많았던 독일 역사의 밝은 앞날을 축복했다.
“국회의사당을 정치 기능만 하는 건물로 보고 지나가면 손해지요. 제게는 거대한 미술관으로 보이는걸요.” 토요일과 일요일, ‘국회의사당 미술 투어’를 이끄는 카트야 라이스너(30)는 미술사를 공부한 전문가답게 건물 곳곳에서 나타나는 미술품 해설에 거침이 없었다. 90점 작품을 제작한 30명 작가 가운데 동독 출신 작가가 30%, 서독 작가가 50%, 외국 작가가 20% 비율을 이뤘다는 설명이다. 무리를 지어 구경에 나선 미술 투어 관람단은 안내인이 새 방을 열어젖힐 때마다 탄성을 질렀다. 독일 역사와 현실이 거기서 숨 쉬고 있었다.

들머리 벽에 휘장처럼 쭉 뻗은 작품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검은색, 빨간색, 황금색’. 독일 국기의 세 가지 색을 거대한 내리닫이 색면으로 표현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국회의사당 들머리벽에 하늘로 솟는 휘장처럼 빛나는 게르하르트리히터의 39검은색, 빨간색, 황금색39.

지붕을 똟타고 하늘로 오르는 듯한 제니 홀처의 LED 기둥 설치품은 독일 국회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1871년부터 1999년까지 국회에서 정치인이 한 발언과 연설 가운데서 뽑은 단어가 쉼 없이 흘러간다. 그 말이, 그 말의 위력이 오늘의 독일을 만들었을 것이다.

볼탄스키는 바이마르 시대부터 국회의원을 지내고 이제는 고인이 된 400명의 명단을 담은 납골당 설치물을 지었다. 귄터 위커가 만든 ‘기도실’은 재ㆍ모래ㆍ못투성이다. 유대인 학살의 아픈 역사를 다룬 죽음과 부활의 벽에 서면 장엄한 슬픔이 밀려온다.

이 건물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한스 하케가 안마당에 만든 미술 화단이다. 하케는 동서독 각지에서 모은 흙과 식물로 조성한 이 화단 가운데 ‘독일 인구에게’란 큼직한 글씨를 새겼다. 국회의사당 정문에 새겨진 ‘독일 국민에게’를 비튼 글로 나치 시대의 인종차별주의를 비판하며 통독 다색 인종 시대를 받아들이는 논쟁적 글귀다.
작품 설명을 마무리한 라이스너는 “너희 나라에도 뭔가 좋은 일이 생길 모양”이라고 덕담을 했다. 그는 얼마 전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문가 몇 명과 함께 국회의사당 미술품 프로젝트를 꼼꼼히 챙기고 돌아갔다며 “정치인들이 통일 이후를 대비하는 모습이 보기 좋더라”고 말했다. 남북 통일 뒤 우리가 만들 국회의사당은 어떤 모습일까, 이런저런 상상이 베를린 하늘을 타고 흘러 다녔다.

국회의사당을 떠나는 길에 역사를 되새김하는 독일인의 결기를 보았다. 1945년 러시아군에 점령당했던 상흔을 간직한 옛 제국의회의사당 건물 벽을 한 폭의 벽화처럼 그대로 남겨 두고 있었다. 그 벽에는 총탄 자국과 러시아 병사들이 남긴 낙서가 선명했다. 또 한쪽에는 유대인을 가둬 학살했던 터널 한 구획이 통째 보존돼 있었다. 역사가 남긴 흔적 또한 미술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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