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톱병 환자(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요즘 점심시간만 되면 웬만한 식당에서 흔히 목격하는 풍경이 하나 있다.
밥숟가락놓기가 무섭게 손님이 「방석 가져와」하면 종업원은 으레 화투장과 담요를 갖다 놓는다. 고스톱은 식당의 단골메뉴나 다름없다. 그래서 고스톱을 즐길 수 있는 조용한 방이 없는 식당은 그만큼 매상도 줄어든다는 얘기다. 이처럼 고스톱열병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제는 중증사회병리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알콜이나 마약처럼 도박도 처음에는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고 가볍게 시작하는게 특징이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한걸음 한걸음 중독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된다. 실제로 미국의 한 연구소가 조사한 결과 알콜,또는 마약중독자의 9% 정도가 상습도박자였고,상습도박자의 42%가 마약중독자로 나타났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알콜이나 마약은 대부분 자신이 몸을 망치는 것으로 끝나는데 비해 상습도박은 상대방까지 피해를 준다는데 있다. 그래서 상습도박자는 사기성이 농후할뿐 아니라 병이 상당히 진행돼도 겉으로는 멀쩡해 오히려 마약이나 알콜중독보다 폐해가 더 크다.
한 심리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상습도박자의 성격은 대체로 극히 정력적이며 경쟁적·공격적·지능적이다. 또 무엇에나 열중하는 강인한 성격이면서 외향적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불안해하고 성미가 급하며 필요하면 거짓말도 곧잘하고,때로는 무자비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이밖에 과시적이며 주의의 폭이 좁고 지나치게 활동적이며 사랑에 굶주려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 결과 사랑의 욕구를 극단적으로 억압하고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물론 이같은 성격은 「돈이면 다」라는 가치관을 갖고 자란 성장배경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특히 남자의 경우는 80% 이상이 어려서부터 외로움과 함께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공포가,여자의 경우는 어머니에게서 배척받거나,또는 어릴때 남자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 분석의 결론은 간단하다. 도가 지나친 도박은 일종의 정신질환이라는 것이다.<손기상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