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망치는 야생동물 남획(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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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극소수의 잘못된 사고나 행태가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관이나 현상을 전반적으로 왜곡시키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일부 부유층의 사치와 퇴폐가 사회분위기 자체를 과소비와 도덕적 문란으로 몰아가는 현실이 바로 그런 예다.
일부 부유층이 야생조수의 박제를 선호하자 천연기념물이 멸종상태에 이르고,정력제로 소문난 뱀의 남획이 들쥐의 번식을 엄청나게 증가시켜 농산물피해가 막심한 현실도 따지고 보면 극소수의 호사스런 허욕때문이다.
검찰에 구속된 밀렵꾼과 박제업자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조수를 무려 1만6천여마리나 남획해왔다는 것은 돈벌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세태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이 만든 박제를 사들이는 몰지각한 호사취미가 없었더라면 이들의 장사가 가능했겠는가.
들쥐의 번식으로 서울시민이 16개월 동안이나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이 10억마리에 가까운 들쥐에 의해 없어지고,유행성 출혈열 등 12가지의 질병이 번져 인명을 위협한다고 한다. 들쥐를 잡아먹는 맹금류가 박제용으로 남획되는데다 이들의 천적인 뱀이 정력제라는 이유로 땅꾼들에 의해 씨가 마를 만큼 잡히고 있기 때문이다. 돈이 된다는데 땅꾼인들 뱀의 천적이 되기를 마다하겠는가.
우선 박제나 정력제를 찾는 일부 호사가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우리의 자연은 생태계의 정교한 먹이사슬에 의해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 이 먹이사슬이 어느 부분에선가 끊기면 생태계 자체가 파괴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의 질서는 물론 인간에게도 재앙이 미친다는게 엄숙한 자연의 법칙이다.
안봐도 그만인 박제나 다른 방법으로도 얻을 수 있는 정력증진때문에 자연과 인간에게 이렇게 회복불능의 재앙을 끼쳐서야 되겠는가.
야생조수의 남획을 감시·감독해야 할 산림청 당국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검거된 밀렵꾼들의 얘기로는 자기들의 행위가 위법인줄을 몰랐다고 한다. 어떤 조수가 천연기념물로 정부가 보호하는 것인줄 알지 못했고,그것들을 사냥하는 행위가 범법인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산림청이 밀렵의 단속은 물론 밀렵에 대한 경고나 계몽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당국은 좀더 치밀하게 수렵의 허용기준을 정하고 위반에 대한 벌칙을 강화하여 밀렵·남획을 예방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겠다.
생태계란 각 생물체가 그들만의 독특한 역할을 수행하며 스스로 평형을 이루는 자기조절기능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 이 생태계가 각종 개발에 의해 파괴돼 가는 것도 국제적인 협약으로 규제하려하는 마당에 일부의 호사취미 때문에 종이 절멸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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