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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중견기업] 4t '밥맛' 테스트 까만 솥, 매출 '꿀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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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까만 색 밥통이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을까."

주방가전용품 전문회사인 부방테크론의 이대희 대표(37.사진)는 고민했다. 지난해 7월 '블랙 앨번'IH(통가열) 전기압력밥솥을 필두로 출시한 블랙 컬러 밥솥시리즈는 그만큼 사운을 건 모험이었다. 다행히 '블랙&실버 나인 클래드'(10인분) 모델은 출시 한 달 만에 3900개가 팔리는 호조를 보였다. 대개 신제품 출시 반 년 동안 1만대 팔리면 성공으로 치는데 이런 추세면 두 배 정도 많이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7인용 모델은 20여일 만에 4200개 팔렸다.

전기밥솥 업계에서 금기시되던 블랙 컬러 아이디어를 낸 건 이 대표다. 그는 이 회사 창업자 이동건 회장(국제로터리 차차기 회장 내정자)의 장남으로 3월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미 클라크 대학 경영학과를 나와 LG전자 수출부서에서 2년간 일했다. 2003년 부방테크론 기획실 이사 시절부터 부엌 인테리어를 바꿀 혁신적 구상을 했다. '블랙 컬러'시도는 31년의 장년에 접어든 기업을 새롭게 이끌 2세 경영인이 내건 도전장인 셈이다.

이 대표는 "부엌 공간은 점점 세련돼 가는데 빨간색 노란색 밥솥만 고집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중산층 신세대 주부들을 겨냥해 검은 색상을 내세워 봤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내 밥솥 시장이 치열한 3파전을 벌이는 와중이라 회사 내부에서는 '너무 파격적인 실험 아니냐'는 걱정도 많았다. 전기밥솥 시장은 쿠쿠홈시스가 1위를 달리고 있고, 부방테크론의 리홈과 웅진의 쿠첸이 2,3위다.

10여년 전 전기밥솥 시장이 주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시대일 때에 부방은 한때 1등을 했다. 지금의 쿠쿠가 된 성광전자와 상농기업.부방테크론이 OEM 시장을 나눠 갖다가 부방이 95년 상농기업을 인수하고 LG전자의 OEM 물량을 잡아 절대 강자로 부상했다. 그러나 그것이 결과적으로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98년 성광전자는 OEM 시장에서 과감히 철수해 자사 브랜드 '쿠쿠'로 새 바람을 일으켰다. 이 대표는 "우리는 대기업의 품에 안겨 홀로서기를 시도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부방테크론은 뒤늦게 '리빙테크''찰가마'같은 자사 브랜드를 내세웠지만 쿠쿠가 앞서 쌓은 진입장벽이 만만찮았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면 어떻게 된다는 걸 절실히 체험했다.

위기는 지속됐다. 2004년 전기밥솥 폭발 사고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끝에 LG전자가 시장에서 철수했다. 곧바로 삼성전자도 사업을 접었다. 대기업이 전기밥솥 OEM 시장에서 완전히 떠나자 부방테크론은 존폐 위기에 몰렸다. 리빙테크 같은 독자 브랜드는 인지도가 금세 높아지지 않아 회사의 구원투수 노릇을 하지 못했다. 더욱이 웅진이 '쿠첸'브랜드로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이 격화됐다.

생존하는 길은 연구개발(R&D) 밖에 없었다. 연구원들은 최고의 밥맛을 내려고 하루에도 수 백번씩 밥을 짓고 또 먹어봤다. 밥솥 모델 하나를 개발하고 테스트하려고 총 4t의 밥을 지었다. 그러면서 떠오른 착상이 '블랙'이다. 이어 수천 번의 디자인 실험이 거듭됐다. 또 내솥의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밥을 가득 채우고 내솥 높이만큼 들었다가 본체에 떨어뜨리는 시험을 1분 당 10회, 5000번을 반복하는 실험도 했다. 블랙&실버 디자인, 9겹(3.6mm)이나 되는 황금 내솥, 터치 센서,자동 스팀 세척기 개발 등은 이런 노력의 산물이다.

부방테크론은 지난해 새 브랜드'리홈'을 내놓아 종합 생활가전 업체로의 제 2 도약을 꿈꾼다. 지난해 리홈의 시장 점유율은 17.5%였지만 올 2월 22%로 뛰었다. 올해 목표는 30%다. 이를 위해 기술.제조.마케팅 세 부문을 혁신하는 '턴어라운드 3' 운동을 벌이고 있다. 2005년 61억원이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마이너스 13억원으로 떨어진 것은 리홈 브랜드 광고.선전비로 100억원을 쏟아 부은 때문이었다. 이 대표는 " 올해는 그 약효가 나타나 매출 3200억원에 1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중국.스페인 등지의 시장을 겨냥해 밥짓기 뿐만 아니라 여러 요리를 하는 '멀티 쿠커'개발도 검토하고 있다. 10% 대인 수출 비중의 내년 목표는 30%다.

글=박미숙 이코노미스트 기자
사진=강욱현 기자

※좀더 상세한 기사는 중앙일보 자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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