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라가치상 특별전을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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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아이들에게만은 검증된 책을 보여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볼로냐 라가치상은 그런 부모들의 불안감을 해소해주는 도서 선택의 기준이 되곤 한다. 24~27일 이탈리아 볼로냐시에서 열린 제44회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을 맞이해 역대 라가치상 수상작과 최종 후보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특별전이 열렸다. '기차 ㄱㄴㄷ'(비룡소)으로 1998년 볼로냐 논픽션부문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돼 한국 작가의 볼로냐 진출 물꼬를 튼 박은영(사진) 작가와 함께 어린이책 스타일의 40년 변천사를 살펴봤다.

볼로냐 아동도서전이 처음 시작된 1964년 즈음의 작품은 정통 회화의 특성이 강했다. 어린이 책만을 위한 별도의 테크닉이나 특징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69년부터 판화 기법이 등장하는 등 어린이책 특유의 일러스트 분위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70년에는 한국인에게도 사랑받는 미국 작가 에릭 칼의 '1, 2, 3 to the Zoo'가 그래픽부문 라가치상을 받았다. 손으로 그린 그림을 가위로 오려 붙여 회화와 판화가 뒤섞인 독특한 느낌을 준다.

79년엔 책장을 열면 입체 형상이 튀어나오는 팝업북이 처음으로 수상작 목록에 올랐다. 기본 책 속지와 다른 재질의 종이를 이용해 책을 열면 해가 솟아오르게 만든 팝업북 'Sol solet'(85년 수상작)도 등장했다. 평면적인 종이 묶음이던 책에 '페이퍼 엔지니어링'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90년대 이후에는 종이가 아닌 반짝이는 재질을 붙여넣어 인공적인 느낌을 가미하는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A frog prince'(90년 수상작)는 요즘의 3D 입체 애니메이션과 같은 느낌을 강조했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 그래픽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지 않은 때라 수작업으로 구현해 냈다. 이후 컴퓨터로 사진과 그림을 합성해 97년 '탁월한 독창성에 주는 특별상'을 수상한 스페인 작가 페레 포르미구에라의 'Se llama cuerpo'가 컴퓨터 시대의 문을 열었다.

박 작가는 "판화 기법이나 여러 소스를 오려붙이는 콜라주를 많이 사용하는 2000년대 이후의 작품에는 거의 전부 컴퓨터의 입김이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종이 재질이나 인쇄 기술도 발달함에 따라 전반적인 그림의 색감과 느낌도 크게 달라졌다. 옛날 책들은 종이질이 떨어져 잉크가 번지고 원래 색보다 약간 퇴색되는 경향이 있었던 데 반해 오늘날에는 색깔이 선명하고 칼로 그은 듯 뚜렷한 선이 표현된다는 것이다.

박 작가는 "기술의 발달로 실험적인 작업이 용이해지고 작가가 원하는 색상을 완벽하게 표현하게 됐지만 손맛이 없다 보니 인간미나 따뜻한 느낌은 오히려 떨어져 아쉽다"고 말했다. 라가치상 역대 수상작 전시회는 볼로냐 아르키지나지오 미술관에서 다음달 12일까지 열린다.

◆ 라가치상=세계 최대 규모인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1966년부터 시상하기 시작한 상. 픽션과 논픽션으로 나눠 각각 유아, 어린이, 청소년 분야로 수상한다. 멀티미디어 분야에 수여되는 뉴미디어 프라이즈와 제3세계 국가의 출판사 작품 중 선정하는 뉴 호리즌 부분도 있다.

볼로냐=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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