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계 안팎으로 “비틀”/한국선주협회 박창홍전무(현장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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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현대상선탈세」 사건 대외공신력 먹칠/5조육박 부채가 경영합리화 걸림돌
『한국해운업이 안팎으로 위기에 몰리고 있습니다. 국제 해운시황은 곤두박질하고 있고 최근 현대상선사태 등으로 국내 해운업계는 바짝 위축된 상태입니다.』
국내 34개 외항선박회사 모임인 한국선주협회 박창홍전무(52)는 국내 해운업계가 지난 84년 해운사통폐합(일명 해운산업합리화)조치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의 종합운임지수(GFI)는 해운업이 호황국면으로 접어든 지난 88년이후 가장 낮은 2백36.2를 기록했다.
박 전무는 이에 대해 전세계적인 경기침체로 화물의 절대량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국지적인 물동량이 늘어나는 해운구조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풀이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아시아권·유럽권·미주권으로 블록화함에 따라 역내 물량이 느는 대신 장거리화물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호주에서 들여오던 철강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한다든가 하는 변화지요.』
이같은 외부환경의 변화뿐 아니라 최근 현대상선의 탈세사건은 어쨌든 해운업이 마치 비자금조성의 온상인양 국민에게 비쳐지게 만드는데다 우리 해운의 대외공신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그는 우려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해운산업발전을 가로막는 것은 취약한 재무구조와 경영합리화를 저해하는 내외적인 요인들이라는데 박 전무는 동의하고 있다.
국내 해운업계가 지난 88년부터 흑자로 돌아섰다고는 하지만 80년대초 사상유례없는 해운불황때 쌓인 누적부채가 작년말 현재 4조9천여억원에 달해 약간이나마 버는 돈으로 은행빚 갚기에 급급한 형편이라는 것이다.
이런 실정에서 해운경영의 합리화를 위한 투자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세계적인 추세지만 배타는 직업을 꺼리는 것도 국내 해운업의 발목을 낚아채고 있다.
입에 파이프담배를 물고 먼 바다를 바라보는 마도로스의 모습이 동경의 대상이었던 때는 이제 옛말이 돼 버렸고 이제는 선원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중국교포까지 쓰게 됐다.
세계 12위의 외형을 자랑하는 국내 해운업은 이처럼 안으로 숱한 난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박 전무는 우리 해운업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어떤 불황이 닥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80년대 들어 선진국에서 활발히 도입하고 있는 이른바 「제2선적제도」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제도는 파나마·라이베리아선적 등과 같은 편의치적 제도의 하나로 국내에 특정지역을 지정해 한국적이 아닌 제2국적을 부여해 여기에 등록된 국내외 선박에 혜택을 주는 것입니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세제·금융상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외국선원을 자유롭게 고용할 수 있어 현재 선진국 해운회사보다 과중한 부대비용 부담과 선원구조인난을 크게 덜어 한국 해운의 국제경쟁력 배양의 기틀이 될 수 있습니다.』
극심한 무역적자 속에서도 우리 해운업계가 지난 한해 40억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인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홍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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