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핵 “지나친 압력은 부작용초래”/호주 앤드루맥교수 불지에 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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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경제·군사제재 내부결속 강화/주요 시설 은닉…,사찰 실효의문
핵문제와 관련,북한에 대한 지나친 압력은 한국으로서 원치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호주 국립대학의 앤드루 맥교수가 13일 파리에서 발행되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에 기고한 글에서 경고했다.
맥 박사는 이 기고문에서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제제재조치등 핵개발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지나친 압력은 ▲오히려 북한 내부의 결속을 강화하거나 ▲김일성체제의 갑작스런 붕괴를 초래하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전망하면서 그 어느 경우든 한국으로서 원하는 결과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그의 기고문 요지.
핵확산금지조약(NPT)상의 이른바 「안전조치조항」이 얼마나 허점투성이 인가를 깨닫게 해준 점은 걸프전이 남긴 중요한 교훈 가운데 하나다. 이라크는 전쟁전부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아왔지만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정보기구에 의해서도 감지되지 않은채 핵개발을 추진해 왔다.
이라크의 교훈은 북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북한이 불법적인 핵시설을 은밀한 지하장소로 옮기고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금년초 미국의 첩보위성은 영변에 나가는 대규모 트럭행렬을 탐지한바 있다. 따라서 IAEA가 북한에 대한 핵사찰을 실시하더라도 어떠한 수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평양측은 핵개발을 부인하고 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북한은 핵무기를 손에 쥐게 됨으로써 미국의 핵위협을 상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련의 상실을 커버할 수 있고,또 적은 비용으로 남한과 재래식 전력면에서의 균형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핵개발에 대해 강력한 수인을 갖고 있는 북한이 만일 앞으로 의심가는 시설에 대한 사찰을 거부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지난해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공중폭격이 자주 거론되기도 했으나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란 점을 차치하더라도 비밀장소에 숨겨진 시설을 과연 어떻게 파괴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며 특히 이는 한반도의 명백한 전쟁위험을 수반한 선택인만큼 남한으로서는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선택이기도 하다.
그보다는 경제제재가 더욱 그럴듯한 선택이다. 이 역시 물론 어려움이 따르는 선택이다. 북한에 대한 지나친 압력에 반대하는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는 만큼 최소한의 경제적 압력도 흡수할 수 없다는 가정하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제재로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은 일반 대중이지 지배 엘리트계층이 아니며 언론매체가 철저히 정부통제하에 놓여있는 상황에서 경제제재에 따른 고통의 화살을 대중들은 정부보다는 외부세계에 돌릴 것이다. 따라서 경제제재는 김일성체제의 합법성을 더욱 강화하면서 핵개발을 계속 추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결과로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압력을 주장하는 미국 사람들은 이러한 제재조치가 북한의 지배계층내에 분란을 일으켜 김일성체제의 붕괴를 촉발,남한에 의한 흡수통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한이 이러한 가능성을 환영할 것으로 기대할지 모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부담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통일후 10년간의 경제적 비용을 남한은 2천억∼3천억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남한 사람들은 당분간 북한이 중국처럼 정치적 안정속에서 경제적 자유화를 추진,생활수준도 향상되고 결과적으로 통일부담도 줄일 수 있기를 원하고 있다.
비록 북한의 핵무장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지만 김일성체제의 갑작스런 붕괴보다는 차라리 낫고,또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더라도 미국의 핵우산이 남한을 보호하고 있는 이상 북한이 핵무기를 먼저 사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이러한 의견에 진저리치고 있어 한미간 마찰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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