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전집 불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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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하루에 20~30명의 손님이 전집(全集)박스를 찾고 있어요."

광화문 교보문고 클래식 음반매장에서 근무하는 이혜원 과장의 귀띔이다. "음반회사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손님도 별 고민없이 전집 세트로 보여달라는 사람들이 많다"고도 했다. 3월 중순 발매된 EMI의 모차르트.베토벤.슈베르트 (각 50장)세트는 계약금 2만원을 내고 기다린 2500여명에 의해 사전매진됐다. 덕분에 EMI코리아는 본사에서 8000세트를 더 들여왔고 이마저 한 달도 안돼 4분의3이 팔려나갔다. 포니캐년 코리아는 2월 쇼팽의 모든 곡을 CD 18장에 담아냈다 1000세트를 거의 다 팔고 박스로 묶어 4월 재발매했다. 이 300세트도 동이 나 재발주에 들어간 상황이다.

작곡가별 전집 박스가 인기다. 5월 초에는 더 쏟아진다. 독일 캐스케이드 음반사는 87장에 베토벤의 모든 음악을 담아 9만원대에 판매한다. 소니BMG는 베토벤의 중요한 곡을 모두 담은 60장의 CD를 7만원대에 내놓는다. 영국 EMI 본사의 클래식 카탈로그 디렉터 그레이엄 서던은 "18개국에서 50CD 시리즈를 발매했는데 한국 판매량이 세계 2위"라고 밝혔다. 두 번 발매한 나라도 한국뿐이다. 인구, 음반시장 규모에 비춰봤을 때 놀랄만한 성공이다. 포니캐년 코리아의 조지현 과장은 "자녀 교육을 위해 구매하는 한국만의 특수한 사례도 전집 흥행에 한몫했다"고 분석했다.

?왜 인기일까=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클래식MD 한미아 씨는 "고민할 필요 없이 CD를 살 수 있다는 점이 최대 매력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세트 하나만 사면 중요한 CD를 모두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구매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CD 서너장 살 돈으로 수십장을 가질 수 있는 저렴함도 물론 장점이다.

클래식 음악 중 대중적인 것만 모아놓았던 기존의 컴펄레이션 음반들과도 차별화된다. 4월 EMI 세트를 산 회사원 유선경(32)씨는 "예전에 '베스트 클래식'류의 음반을 사면 음악을 뚝 끊어 편집하거나 믿을 수 없는 연주자가 녹음한 경우가 많았다"며 "하이팅크 지휘에 바렌보임 피아노와 같은 세계적인 수준의 연주를 쌓아놓고 들을 수 있어 좋다"고 높은 점수를 줬다.

MP3 등에 밀리면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CD 판매량에 고심하던 음반사들에게도 전집 시리즈가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아울로스 뮤직의 임영묵 이사는 "MP3 파일을 모아 베토벤 전집을 만들기는 힘든 만큼 싼값의 CD 전집이 경쟁력이 있다"고 풀이했다. 음반사로서는 묵히고 있는 음원을 다시 끄집어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김호정 기자



■ 어떤 세트를 살까

(1)브릴리언트 클래식스=바흐.모차르트 전곡을 160.170장 CD에 담았다. 각 20만원대.

EMI 등 메이저 음반사의 음원을 이용해 다소 가격이 높지만 다양한 연주자의 녹음을 들을 수 있고 작품 해설도 충실한 편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의 가격차이가 크다.

(2)EMI=모차르트.베토벤.슈베르트가 50장씩에 담겼다. 각 7만5000원. 연주자 수준이 가장 높다. 각 곡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가곡의 가사 등을 볼 수 없는 것이 단점.

(3)소니BMG=베토벤 60장 7만7500원. 아이작스턴.요요마 등 화려한 연주자의 녹음이 베토벤에 한정된 점이 아쉽다.

(4)캐스케이드=베토벤 87장 9만1000원. 가장 많은 곡이 빠짐없이 포함된 전집이지만 연주자 구성이 메이저 음반사만 못하다는 평도 있다.

(5)포니캐년=쇼팽 18장 12만원. 쇼팽 전집으로는 유일하며 역대 쇼팽 콩쿠르 입상자(1~5위)와 심사위원들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한국 소비자에게는 다소 낯선 연주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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