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교육원 의혹(정치와 돈:9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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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매각대금 모두 받아 총선때 6백억원 사용 추정/「한양」서 계약외 뒷돈설 무성/주간연재
민자당 대통령후보 경선전은 초기부터 박태준최고위원 출마저지,이종찬후보의 「중대결심설」,가락동 당 교육원부지 매각사건 등으로 얼룩져왔다.
특히 지난 1일 세 최고위원이 참석한 고위당직자회의에서 「더이상 문제삼지 않기로」 마무리된 교육원 매각건은 집권여당의 정치자금 조성방법의 일단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관심가는 대목이 많다.
매각문제는 3·24총선이 끝난후 김영삼대표에 반대하는 민정계사무처요원 사이에서 흘러나오다가 경선전이 본격화된 4월말 이 후보 진영에서 「폭로전」의 일환으로 공식화한 성격이 짙다. 그랬던 것이 매각대금의 당 유입사실,이과정에서의 특혜의혹이 속속 드러나게 되자 당 전체가 심각한 도덕적·정치적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공멸방지」 차원에서 이 후보 진영이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김영삼후보측 일각에선 이 사건의 파문이 계속 확산될 경우 이 후보진영인 박 최고위원이 총선과정에서 쓴 돈과 자금조성 경위에 대한 「맞 폭로전」으로 대응한다는 자세를 보이기도 해 민자당은 자칫 돈문제로 와해위기를 맞을뻔했다.
민자당은 지난 2월초 1만9천9백86평에 이르는 가락동 교육원 부지를 (주)한양측에 팔기로 하고 이를 위한 약정서를 서로 교환했다.
약정서에 따르면 대금은 평당 6백64만원인 1천2백87억5천만원이고 매매대금의 지급시기 및 지급방법은 별도로 정하기로 돼있다.
당측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아직 대금지급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이와 관련한 일체 의혹이 있을 수 없다고 밝히고 있으나 비공개로 진행된 고위당직자 회의에서 이춘구사무총장은 『매각대금으로 선거를 치렀고 이중 2백11억원이 당 금고에 보관돼 있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양측도 지난 3월초 주거래은행인 상업은행으로부터 5백억원의 은행대출(대출금 2백억원,지급보증 3백억원)을 받은 사실이 확인돼 이 자금이 매각대금 혹은 다른 명목으로 민자당에 흘러들어가 총선자금으로 쓰였을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양은 부지매입 계약과 별도로 충남 천안군에 교육원 신축 공사를 하고 있는데 공사비로 약 4백50억원이 들고 이 대금은 가락동 부지매입비에서 상계키로 했다
따라서 정치자금 조성을 위한 「검은 뒷거래」는 논외로 친다하더라도 땅값과 공사비의 차액 8백30여억원이 민자당으로 이미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이 돈에서 2백11억원을 뺀 6백여억원은 3·24총선에서 민자당이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선거자금과 비슷한 규모여서 더욱 흥미롭다.
민자당은 이번 선거에서 지구당 공천자대회때 2백37명 후보에게 3천만원의 격려금을 노태우대통령 명의로 지급한 것을 비롯,두차례에 걸쳐 각각 1억원씩 평균 2억3천만원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액수를 따져보면 5백35억원이고 기타 경비를 합치면 총선비용이 6백억원이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이 이같이 자기 당의 재산을 팔아 선거자금을 쓰도록한 방식은 정치권의 기존관행으로 비추어 볼때 대단히 새로운 현상이다. 보통의 경우 대기업으로부터 정치헌금을 받거나 이권을 넘겨준 대신 「사례금」조로 받는 것이 주종이다.
그러나 이를 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대통령의 무능 ▲퇴임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손에 때 안묻히기 차원에서 바라보는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실제로 기업으로부터의 헌금이 없었을리도 없거니와 당의 재산을 늘리지는 못할망정 「제살 깎아먹기」를 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정주영국민당대표의 정치헌금 폭로발언이 부담스러웠고 본인 스스로 수차례의 선거전을 통해 『기업돈이 정치권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을 철저히 차단하겠다』고 말한 약속을 지키고 싶었을 수 있다.
이와 별개로 교육원부지 매각과정에서 나타난 몇가지 의혹이 정치자금 조성설과 관련해 여전히 남아있다.
(주)한양에 대한 상업은행의 대출자금 규모가 파격적이어서 은행감독원이나 정치권의 입김없이 이같은 대출이 가능했겠느냐는 점이다. 사실 한양은 지난 80년 중동건설시장에서 실패한 이래 86년에는 산업합리화업체로 지정되는 등 은행의 거액 신규대출을 받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또 매각가격이 2년전인 90년도 감정가 1천2백37억원에 겨우 50억원만 더 얹은 가격이라는 점이 또다른 의혹으로 남아있다.
가락동 부지의 평균 땅값 시세가 7백만∼8백만원이고 대로변은 1천만원까지 호가하는데 지나치게 싸게 팔았다는 지적인 것이다. 결국 당 재산을 공식적으로는 싸게 팔아 넘기면서 이면계약이나 사적인 정치자금 수수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소문이 무성하다. 이 경우 당시 계약 당사자인 김윤환 전 사무총장과 직접 보고를 받은 노 대통령에게 의혹의 시선이 보내질 수 밖에 없다.
김 전총장이 김종필·박태준최고위원에게 이 사실을 보고조차 하지 않은 것도 정치자금의 비밀스런 수수과정을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비판적 시각이 당내에 엄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전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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