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의 급우에 희망을”(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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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서울 풍납동 토성국민학교 5학년 9반에는 급우인 찬규의 얼굴을 아는 어린이가 그리 많지 않다.
새학급을 배정받기도 전인 2월18일 찬규가 선천성 신장병의 합병증세인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채 자리가 비어있기 때문이다.
몇몇 친구들만이 몇년전부터 파리한 얼굴로 1년이면 두세달씩 결석을 하는 말없던 찬규를 기억할 뿐이다.
찬규는 영동세브란스병원 소아과병동 3052호 6인용 병실에 누워있다.
한번에 두세시간씩 걸리는 고통스러운 혈액투석치료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콩팥이식수술을 받는 것이 찬규의 소원이다.
『조금만 있으면 뛰어놀 수 있다며 웃는 애 얼굴을 볼때마다 치료비 걱정으로 잠을 이룰 수 없어요.』
어머니 지경택씨(40)는 아들에게 자신의 콩팥을 주기 위해 조직반응검사를 받았지만 2천만원이 넘는 입원비와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보증금 6백만원에 월세 13만원하는 풍납동의 한 단칸방에서 운전학원 강사일을 하는 남편,중3짜리 딸과 함께 사는 자신의 처지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한때 지씨는 자신들의 가난과 무능을 탓하며 아들의 퇴원을 준비할 수 밖에 없었다.
4월초 뒤늦게 딱한 처지를 안 풍납국교 어린이들과 교직원들이 찬규돕기운동을 펼쳐 5백여만원을 모아 퇴원을 겨우 미루었지만 수술비는 여전히 막막하다.
『어린이들의 작은 정성만으로 찬규의 수술비를 대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치료비가 없어 흔들리는 어린 생명을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24일 병원을 찾은 담임 남인기 교사(48·여)는 오늘도 수술받을 날만을 기다리는 찬규의 손을 굳게 잡으며 학급친구들의 격려를 전한다.
『찬규야,우리는 너와 함께 뛰어놀고 공부하고 싶단다.』
매일 아침이면 학교에 가는 꿈을 꾼다는 찬규에게 전해진 쪽지속에 담겨진 새 반친구의 간절한 기대가 실현될 날은 언제일까.<이현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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