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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혁 제대로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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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0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국민연금법 개정을 위한 단일안에 사실상 합의하면서 법 개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단일안은 현행 9% 보험료율은 유지하면서 급여를 40년 가입 기준으로 평균소득의 40%로 낮추고, 조세를 재원으로 가입자 평균소득의 5%에서 시작해 2028년까지 10%로 인상하는 기초노령연금을 노인의 60%에게 지급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국민연금법 개정에 대한 여야 합의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 정치권이 법 개정의 필요성에 동감하고 의견차를 조율해 단일안을 위한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2003년 10월 국회에 제출된 후 허송세월하다가 쫓기듯 단일안에 합의하다 보니 충분히 고려했어야 할 중요한 사항들이 간과된 한계를 동시에 갖고 있다. 한마디로 인기 없는 보험료 인상은 포기하고 장기적으로 영향이 발생하는 급여만 삭감하는 인기영합적 결정이다. 따라서 이 제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는 데 미흡할 뿐만 아니라 근본적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다.

우선 2003년과 2006년 제출된 개정안에 각각 15.9%와 12.9%의 보험료율이 제시된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번에 합의된 9% 보험료율로는 법 개정 시 가장 우선시해야 할 재정안정에 미치는 기여가 미흡하다.

또한 개인연금과 기업연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급여를 급격히 낮춰 적절한 수준의 노후소득보장이 불가능하다. 보험료율은 그대로 유지한 채 재정안정화 방안을 찾다 보니 급여수준을 현행 60%에서 40%로 낮추는 것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명무실한 개인연금과 기업연금의 활성화 방안은 마련하지 않은 채 국민연금 급여를 급격히 낮추는 것은 적절한 수준의 노후소득보장을 추구해야 할 정부의 사회보장정책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다. 특히 취업난으로 실제 취업기간이 20여 년에 불과한 현실에서 국민연금이 결국 20%를 상회하는 소득밖에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진다.

무늬만 개혁이라는 비난도 있다. 법 개정으로 국민연금의 재정은 다소 안정되지만 기초노령연금 도입으로 정부의 재정지출은 급증하게 된다. 따라서 보험료와 세금을 합산해 계산하면 이번 합의안은 재정안정화를 위한 개정으로 평가할 수 없다. 이러한 측면은 기획예산처가 기초노령연금 재원 조달을 위해 국채를 발행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을 밝힌 현재의 어려운 상황에서 심각히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정책목표 설정의 효율성이 떨어져 예산 낭비도 예상된다.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제한된 목표집단에 집중적으로 지원해 빈곤을 완화해야 한다. 그런데 기초노령연금의 목표집단이 노인의 60%로 광범위하게 설정돼 있어 정책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밖에 무기여의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함에 따라 기여와 급여의 연결고리가 차단돼 취업노력의 자조(自助)유인이 약화된다. 이는 앞으로 도래할 고령사회 극복에 필요한 노동공급 증대에 역행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근본원인은 무시하고 증상만 완화하려는 여야의 대증요법적 합의안은 국민연금법 개정을 참고해 개혁 강도를 조정하려는 공무원연금에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

국민연금제도 도입 시 모범사례로 제시됐던 독일에서는 연방정부 예산의 24%가 국민연금 적자보전에 사용돼 정부의 재정운용에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국회가 국민연금을 제대로 개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 개정과 동시에 새로운 개혁 논의가 시작될 수밖에 없다. 또한 보험료율 인상이 수반되지 않는 국민연금법 개정은 후손에게 막대한 부채를 전가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상호 관동대 국제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