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접근 아쉬웠던 현대사건/심상복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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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0일간 끌던 현대전자의 대출금 유용문제가 진정국면으로 들어섰다. 지난 3일 당국이 갑자기 치고나온 대출금 유용건은 현대측의 일처리에 하자가 있었던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문제가 복잡하게 꼬인 것은 정부당국이 경제문제를 경제로만 풀려고 하지않은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를 「경제적으로」 접근했다면 대출금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당연히 알아본 후에 일을 벌였을텐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첫번째 단추가 이같이 잘못 끼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단추를 계속 끼우다보니 문제가 더 꼬여졌음은 물론이다. 금융거래실상을 충분히 파악하지 않고 정치권의 입장까지 고려해 성급하게 일을 터뜨린 것이 소모전 양상으로 전개되다 양측 모두에 상처만 안긴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문제를 마무리 짓고자 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당국은 아직도 현대쪽의 대출금 유용은 사실이나 정상을 참작한 것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명분은 놓칠수 없다는 입장표명으로 비춰진다. 현대전자에 대해 주력업체 취소방침은 유보하면서 정주영씨등의 주식매각과정에 위법혐의가 있다고 지적한 대목도 같은 차원으로 해석된다. 과거 같으면 정부권위에 흠집이 생기는 일은 용납할수 없다며 무리수를 강행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번 당국의 신축성있는 사태처리자세는 평가할 만하다.
재계는 정부가 앞으로는 적어도 기업과는 불필요한 논쟁을 벌이는 일을 그만 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며 설사 그런다 하더라도 현대전자 문제 해결에서와 같이 현실과 합리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치권력이 경제사회의 어디까지를 지배하고,돈의 위력이 정치보다 센지는 알수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양자의 관계가 적대적일 수만은 없다는 점이다. 좀더 터놓고 얘기하면 정치와 경제는 상호 의존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같은 속성은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선진국의 경우 그 정도가 은근하게 표출되는 것이 대부분인 만큼 사이가 나빠져도 소리를 내며 싸우는 일은 드물다. 우리나라도 이번 일을 계기로 정치와 기업의 관계를 좀더 세련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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