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자금난 어떻게 풀것인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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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시중에 풀린 돈의 양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크다. 현금 뿐만 아니라 은행에서 쉽게 끌어내 쓸 수 있는 예금잔액의 규모가 경제순환에 충분한가의 여부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돈의 혈액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4월들어 기업의 자금난은 더욱 심해지고 있으나 은행 대출창구는 얼어 붙었다. 일부 은행 지점장들은 자금대출요구를 피하기 위해 사무실을 떠나는 정도에 이르렀다. 돈가뭄은 한은이 총선때 풀린 돈을 거둬들이고 있는데다 단자사들의 업종 전환에 따른 여신규모축소,증시침체 등에서 빚어지고 있다.
자금시장에 부도설이 난무하면서 상당수 기업들의 어음 수령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가격이 떨어져도 매매조차 되지 않는 부동산을 선뜻 담보로 잡겠다는 금융기관도 없어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의 도산이 줄을 이을 판이다.
통화당국은 이달의 통화수위를 어느 정도로 설정할 것인지를 놓고 신중한 검토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돈의 양을 경직적으로 다루지 않으면 돈의 속성상 다시 은행으로 돌려받기가 어려우며,따라서 관리도 매우 경직적일 수 밖에 없다는게 한은의 입장이다. 그럼에도 이달의 총통화 증가율은 이미 당국의 목표를 훨씬 넘어선 19%이상이 될 것이며,물가안정 기조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업계는 돈을 더 풀면 물가상승과 직결된다는 50∼60년대 통화론적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는한 산업경쟁력을 갖추기가 힘들다고 반박한다.
이 시기에 조순 한은총재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통화가 방만하게 풀리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나 이달과 같은 경우 억제선을 지키는데 매달리지 않겠다고 신축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신축성」발언은 통화긴축의 기본 흐름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은 전혀 아니며 매월 경제상황에 맞게 돈을 늘렸다 줄였다 하겠다는 유연성의 표시로 해석된다.
지금까지 여론은 잘못된 방향에서 통화목표관리를 비판해왔다. 어느 한달의 총통화 증가율이 억제선을 넘어서기만 하면 가차없이 몰아세웠고 한은은 더욱 목표관리에 집착해 왔다. 따라서 어느달의 통화가 일정선을 초과하면 곧 경제가 결딴나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국이 이미 여러차례 강조하면서도 여론의 비판에 견디다못해 결국 움츠러들고만 분기별 통화관리 방침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 이를 집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 방침은 근본적으로 긴축노선을 바닥에 깔고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어느 분야의 구조조정에서나 즉효약은 없다. 금융도 마찬가지이며 긴축은 서서히 이뤄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쓰러지는 비효율적인 기업은 경쟁력 있는 기업의 탄생에 큰 교훈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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