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게리 새모어 칼럼

北은 핵무기를 포기할 것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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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2007년 2월 13일에 성사된 6자회담 합의는 북한 핵문제에 대한 미국 정책의 극적인 전환을 의미한다.

2003년 북한이 비밀리에 핵무기용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돼 북ㆍ미 제네바 핵협정이 파기됐다. 당시 부시 행정부는 미국이 북한에 경제적ㆍ정치적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요구했다. 이런 요구에 힘을 싣기 위해, 워싱턴은 평양에 금융제재를 가했다.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에 압력을 가해 북한 자금 2500만 달러를 동결케 한 것이다. 북한 자금엔 불법 마약거래와 위폐 제조로 벌어들인 돈도 포함된다. 일부 미 관리들은 제재가 김정일 정권의 생존능력을 박탈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봤다. 북한 내 정권교체로 북한의 핵위협을 제거한다는 구상이었다.

게리 새모어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군축담당 대통령 특보로서 북ㆍ미 제네바 합의 때 미국 대표단 부단장으로 참석한 외교전문가.


평양은 그러나 워싱턴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6자회담을 보이콧했다. 2006년 7월 미사일 실험과 10월의 핵실험으로 북ㆍ미 간 대치국면을 격화시키기도 했다. 이에 맞서 미국은 북한에 대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제한적 제재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미국은 동북아에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될 형편이었다. 워싱턴은 중동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대해서도 동시에 힘을 기울여야 했다. 이라크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이란의 핵무기 생산능력 확보를 저지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대화를 재개시켜야 했던 것이다. 워싱턴으로선 아시아에서 새로운 위기가 시작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 그 결과 북한에 완전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대신 보다 낮은 단계의 핵 관련 합의에 만족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통해 상황을 안정시키고 북한의 핵능력을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2ㆍ13 합의는 유용한 첫걸음이다. 합의 이행을 위한 첫 단계에서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참관하에 영변 핵기지의 플루토늄 생산시설을 폐쇄하고 봉인해야 한다. 그 대신 한국은 5만t의 중유를 북한에 제공한다. 추가적 유인책으로 미국은 동결한 BDA의 북한 자금 2500만 달러 반환에 동의했다. 평양은 이 자금이 ‘인도주의적’ 목적에 사용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2ㆍ13 합의의 본질은 제네바 핵협정에 따라 1994년에서 2003년 사이 이뤄진 플루토늄 생산 동결을 복원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새로운 동결은 너무 늦게 이뤄져 북한은 2003~2006년 핵무기 6~8기 생산에 충분한 플루토늄을 확보했다. 북한은 94년 이전 이미 한두 개의 핵무기 생산이 가능한 플루토늄을 확보한 것으로 의심받았다.

현재 2ㆍ13 합의 이행의 첫 단계는 BDA 동결자금을 북한으로 반환하는 데 따른 ‘기술적 지연’으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 어려움이 존재하지만 결국 북한은 IAEA 감독하에 영변 핵시설을 폐쇄할 것이다. 그러나 합의사항의 제2단계 실행은 훨씬 더 어려울 전망이다. 2단계에서 북한은 비밀 농축 프로그램을 포함, ‘핵 프로그램 전체를 완전 공개’하고, ‘모든 기존 핵시설의 불능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대신 북한은 5만t의 1차분 선적을 포함, 100만t의 중유에 해당하는 경제ㆍ에너지 지원을 받게 된다.

많은 어려움이 2단계 실천을 가로막고 있다. 첫째,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공개할 경우 북한을 매우 ‘성가시게 하는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선 그 확인이 어려울 것이며 평양은 이에 저항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평양이 소규모 농축 프로그램을 위한 연구개발의 존재를 인정했다고 치자. 북한이 공개한 내용에 대해 결론을 내리기 위해선 과학자 인터뷰, 현장 검사, 문헌 검토, 환경 샘플 채취가 필요하다. 둘째, 북한은 추가 핵폐기 대가로 경수로 프로젝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고집하나 미국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셋째, 협상가들은 ‘불능화’의 의미를 규정해야 한다. 당연히 북한은 필요하면 핵시설을 복원할 수 있는 기술적인 조치를 원할 것이며, 미국은 북한 핵시설의 항구적 폐기에 필요한 조치를 추구할 것이다.

이외에 연계와 시기라는 보다 정치적 이슈들도 있다. 북한은 추가 핵폐기 조치를 취하기 전에 미국이 먼저 대북 제재를 철회하고 북한을 테러국가 목록에서 빼주기를 바란다. 일본은 납치문제 해결에 진전이 있을 때까지 미국이 북ㆍ미 관계 정상화를 연기해주기를 원한다. 이런 것들은 아직 진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평양은 미국에 새 행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추가 조치 실행을 미룰 수도 있다. 신임 미 대통령으로부터 좀 더 좋은 조건을 얻어낼 수 있다고 북한이 생각하면 말이다. 부시 대통령이 비록 위기를 회피하기 위해 상당한 양보를 하기로 결정했지만 북ㆍ미 관계의 극적인 진전은 잔여 임기의 최우선 과제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문제는 평양의 지도부가 핵억지력을 보유하는 게 북한을 외부의 압력과 위협으로부터 방어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북한은 핵개발 능력을 제한하는 대가로 후한 보상을 받는 것은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핵무기라는 보루를 완전히 포기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결국 2ㆍ13 합의로 인해 한반도의 비핵화가 가까운 장래에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2월 합의는 북한의 핵개발 능력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추가적인 비핵화와 정치적 조치를 취하는 데 필요한 협상의 틀을 제공한다. 이 과정을 부시 대통령이 시작했기 때문에 민주당 출신이건, 공화당 출신이건 차기 미 대통령의 대북 정책 수행은 보다 수월해질 것이다. 현재로선 실질적 핵폐기 실현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특정 조건이 설정되면 종국에는 핵폐기를 가능케 하는 협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특정 조건이란 한국전쟁을 종료하는 평화협정 같은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은 미국과 그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핵무장한 북한이라는 위협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리= 김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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