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신력 있는 백범 조사위 구성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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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안두희씨의 자백이후 백범암살의 진상이 오히려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느낌이 깊어지고 있다. 결국 안씨의 자백이 진상에 접근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게 아니라 자백이전의 미궁상태로 돌아가는 듯한 혼선이 일고 있음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그 첫째 이유는 언론이 암살범 안씨의 자백에만 지나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아무런 검증없이 자백 곧 진상이라는 선입관을 갖게 했다는 점이다. 그다음,언론의 지나친 경쟁보도가 중구난방식의 증언을 제시함으로써 진상 자체의 규명보다는 자칫 폭로위주의 인기영합식 접근으로 흐를 소지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안씨는 그후의 증언에서 앞의 증언을 번복함으로써 그의 증언 자체가 신빙성을 잃게 했다. 믿을 수 없는 안씨의 자백이나 증언만을 중시할 경우,암살의 배후는 엉뚱한 방향으로 왜곡될 수 있고 뜻밖의 피해자가 속출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안씨는 처음에는 배후세력을 김창룡과 미국 정보국 요원의 지시,또는 암시라고 했다가 바로 이튿날 이를 번복하고 장택상씨등 경찰쪽으로 배후의 방향을 돌려버렸다. 이대로 그의 진술을 아무런 검증없이 언론이 경쟁적으로 보도만 한다면 그의 말 한마디에 진상은 엉뚱한 방향으로 왜곡될 수도 있고,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보다 객관적이고 엄정한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공신력있는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이 위원회는 14대 국회의 개원과 함께 여야가 망라된 특별위원회 형식을 취하면서 정부는 관련된 일체의 문건과 자료를 성의있게 제공하고 민간 학자를 대거 참여시켜 실체적인 진상을 밝히는 작업을 벌이기를 제안한다.
국회의 공식적인 권위를 빌림과 동시에 전공 학자의 실무적 조사를 통해 객관적 진상규명을 벌이는 형식을 취해야 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신력있는 위원회의 구성없이 현재대로 일과성 폭로주의로 계속 흘러 버린다면 매몰된 역사의 한 장을 파헤칠 기회는 두번다시 오지 않을 것이고,왜곡된 우리의 현대사는 영원히 바로 잡힐 기회를 놓치게 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해방정국에서 나름의 기여를 한 사람들이 확실한 증거도 없이 명예에 상처를 입게될 위험이 크다.
다행히 정부와 국회 모두가 진상규명을 위해 성의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해서 1차적으로는 백범암살사건에 주력하고,그 뒤를 이어 몽양 여운형,고하 송진우 설산 장덕수 암살 등에 관한 재조명과 재규명이 계속해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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