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두희수사 검찰은 들러리/최대교 변호사 회고록 발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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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헌병이 관할경찰서장 폭행/현장검증까지 군에서 좌우
백범 암살사건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검사장이었던 최대교옹의 증언은 그동안 추리·심증에 머물렀던,치밀하게 계획된 「정치음모극」의 진상에 한발 다가가게 했다. 올해 91세의 노령인 최옹은 법조계 생활 60년을 정리하며 7년전부터 회고록을 집필해 왔다. 회고록 초고중 백범 암살사건 관련 부분을 발췌,사건 진행 순서로 엮었다. ◇현장출동=일요일인 1946년 6월26일 낮 1시쯤 검찰청 정원에서 산책을 하고 있을때 이원희 부장검사가 황급히 달려왔다.
『검사장님,김구 선생님께서 당했습니다.』
『뭐요.』
순간 강한 충격에 몸이 떨렸다. 즉시 이검사와 함께 지프를 타고 경교장으로 향했다.(검찰청에서 경교장까지는 차로 5분거리)
도중에 현장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잠시 관할 서대문경찰서에 들렀다.
뜻밖에도 이하성 서장은 지하숙직실에서 모자를 쓴채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관내에서 태풍이 불고 있는데 관할서장이 뭐하고 있는 거요.』
대뜸 나무라자 이서장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손을 내저으며 『헌병들이 지키고 있어 접근도 못합니다. 들어가려다 헌병들에게 얻어 맞았습니다』는 어이없는 설명이었다.
경교장 주변에는 헌병들이 깔려있었고 신분을 밝히고 들어가려 하자 한 헌병 대위가 『보안상 출입금지』라며 가로막았다.
『살인사건이 나면 검사가 검증을 하도록 법으로 정해있는데 무슨 소리요.』
그러나 대위는 막무가내였다. 할 수 없이 돌아서며 『헌병들이 폭력을 써 현장검증을 막았다고 상부에 보고하겠다』고 엄포를 놓은뒤 검찰청으로 돌아왔다.
잠시후 그 대위가 검찰청까지 찾아와 『상부에서 허락이 떨어졌다』고 안내,광목에 쌓여있는 김구 선생의 유해에 대한 검시만 20분간 실시했다.
수사의 기본인 현장조사는 물론 안두희의 얼굴도 볼 수 없었다.
검시직후 곧바로 김익진 검찰총장에게 전화했으나 외출중이어서 권승렬 법무장관에게 갔다.(중략)
권장관과 함께 이범석 국무총리 집으로 갔으나 대문에 「수렵 출장중」이라고 적힌 큼지막한 종이가 붙어있었다.
다시 발길을 돌려 신성모 국방장관집으로 갔다.
대문앞에는 뜻밖에 최용덕 공군참모총장이 서성이고 있다가 우리와 마주치자 깜짝 놀라며 『신장관은 몸이 불편해 누워있다』고 했다.
우리가 중대한 일이니 뵙겠다고 하자 최총장은 잠시 안으로 들어갔다 나온 뒤 안채 침실로 안내했다.
잠옷차림의 신장관은 김구 암살에 대한 보고를 받은뒤 묘한 표정을 지으며 『이제 민주주의가 됐군』하며 짤막한 한마디를 던졌다.
신장관은 언제 몸이 불편했느냐는듯 유쾌한 얼굴로 『경무대로 가자』고 했다. 경무대에 연락해보니 이대통령은 낚시를 갔다는 것이었다.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이상했다.
국무총리는 「때아닌 수렵」,국방장관의 「수상한 와병」,대통령의 「낚시」 등.
◇영장발부 및 수사지휘=암살사건과 관련,검찰은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않았고 모든 것은 군에서 이뤄졌다.
안두희는 군인(당시 소위)이므로 군수사기관에서 담당하는게 일면 수긍이 가지만 그외 부분은 검찰이 담당해야 마땅한 것이다.
암살사건뒤 1주일후였다.
검찰청 출근길에 법원 울타리를 손질하고 있는 한격만 법원장을 보고 옆에서 일을 거들다 뜻밖의 말을 들었다.(당시 서소문에 검찰청과 법원이 담 하나로 위치하고 있었다)
『원 이런 일도 다있소. 한독당(위원장 김구) 간부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날더러 직접 떼라고 합니다. 그래서 떼기는 했지만…다시는 그런 짓 안할랍니다.』
깜짝 놀라 누가 청구했느냐고 묻자 『김 검찰총장이 직접 신청했다』는 설명이었다.
곧바로 검찰총장에게 달려가 터무니없는 영장발부 경위를 따졌다. 김총장은 몹시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경무대쪽으로 가리켰다. 『저 영감탱이(이대통령 지칭)가 노망이 들었는지 최검사장에게 일체 비밀로 하라고 해서 그리 된 게요. 양해하시오.』
순간 피가 솟구쳤다.
『저를 그리 못 믿으시면 물러가겠습니다.』
곧바로 사무국장에게 「형편에 의해 사직합니다」라는 짤막한 사직서를 제출하고 고향인 전북 익산으로 내려가 1주일동안 은거하다 대충 마음이 정리돼 상경했다.
그뒤 권 법무장관이 사표를 반려하고 설득,복직했지만 당장 살인교사죄로 영장이 신청된 김학규 조직부장등 한독당 간부에 대한 재판과정에서 검찰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그뒤 암살범이 강원도에서 군납공장을 해 한때 「강원도 제2의 고액납세자」가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역사가 크게 잘못 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정리=이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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