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모래판, 멀고 먼 지역연고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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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예부터 씨름은 동네 대항전이었다. 여러 부락에서 모인 장사들이 샅바를 맞잡으면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마을 선수의 이름을 목청껏 외치며 기세를 올렸다. 상금으로 받은 황소를 잡아 마을 잔치를 벌이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스포츠의 이런 지역대항적 성격은 요즘도 여전하다. 야구든 축구든 모두 지역을 기반으로 한다. 팬을 모으기가 그만큼 쉽기 때문이다. 그래야 스폰서도 붙고 광고도 따라온다.

한데 정작 '지역주의'의 원조 격인 씨름만은 '기업주의'로 남아 있다. 현재 현대중공업.LG투자증권.신창건설 3사만이 씨름단을 운영하고 있다. 자연 분위기가 썰렁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역대회마다 갖는 단체전은 싱겁기 그지없다. 두팀끼리 막바로 준결승(?)을 치른 뒤 곧바로 나머지 한팀과 결승전을 갖는 식이다. 보는 맛이 있을 리 없다. 방송사와의 중계권료 협상에서도 불리할 수밖에 없다.

올해 마지막 장사대회로 12일 인천에서 열린 2003 세라젬배 인천 천하장사씨름대회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단체전'이란 이름을 '최강단전'으로 바꿔봤지만 관중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씨름연맹의 가장 큰 고민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방법은 하나, 지역연고를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새 씨름단이 많이 늘어나는 것뿐이다.

이호웅 씨름연맹 총재는 "유력 기업들을 돌아다니며 씨름단 창단을 호소해봤지만 '이미지가 (우리 기업과) 맞지 않는다' '형편이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말했다.

씨름이 일본의 스모처럼 '국민적인 전통 축제'로 되살아날 날은 아직도 요원한 모양이다.

인천=진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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