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보내야 하는데" 학부모 당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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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한국 유학생들이 미국 사회에서 따돌림이나 공격을 당할지도 모르겠다." 9월 미국 워싱턴 DC의 조지워싱턴대에 진학할 예정인 김한민(24)씨는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격 사건으로 미국 내에 반한기류가 생길까 걱정이다.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인 학생이나 학부모 가운데는 김씨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특히 초.중.고생 자녀를 유학 보내려던 학부모들의 고민은 더욱 커졌다. 가족을 미국에 보낸 기러기 아빠들은 인터넷 메신저나 전화로 가족의 안부를 연신 확인했다. 이에 따라 미국으로 거는 국제전화도 폭증했다. KT에 따르면 국내에 한국인이 총격 사건 범인으로 확인된 17일 밤 9시부터 12시까지(3시간) 미국으로 건 국제전화(001)가 2만 건으로 평소보다 80% 늘었다. 18일 오전 6~8시(2시간)의 통화 건수는 지난주 같은 시간대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1만7000여 건에 달했다.

◆ 미 유학 열풍에 찬물=18일 오전 서울 한영외고.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유학준비반이 있는 이 학교에서 이날 화제는 단연 버지니아공대 총격사건이었다. 진로를 걱정하는 소리도 나왔다. 이 학교 국제반의 이헌준(18)군은 "유학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지만, 이번 일 때문에 한국의 위상이 떨어져서 유학에 불리해지는 것 아니냐"고 불안해했다.

미국에 초.중.고생 자녀를 조기 유학 보내려던 학부모들도 당분간은 미국 상황을 지켜보며 유학 일정을 조정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회사원 최모(39)씨는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을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보낼까 말까 고민 했었는데 이런 일이 터지고 보니 안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안도했다. 경기도 부천의 이혜정(41)씨도 "고1인 딸이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데 한국 학생들을 안 받아주려는 분위기가 있으면 어쩌나 우려된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유학업체 iAE 유학네트 박상렬 전무는 "학부모들로부터'출국일을 조금 늦춰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상담 전화가 많이 온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 대학이나 대학원 유학을 준비중인 학생들의 걱정도 커졌다. 뉴욕 유학을 준비 중인 정다운(27)씨는 "교민들도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는데, 미국에서 학교 다닐 일이 두렵다"고 했다. 6월 초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디자인스쿨로 유학 갈 박은지(26)양은 "심사가 강화돼 비자가 안 나오는 것 아니냐"며 걱정했다. 미 동부에 있는 대학원에 지원한 구모(25)씨는 "유학 준비 때문에 심란한데 이 사건까지 터지고 나니 유학을 갈까 말까 고민된다"며 "부모님도 안 가는 좋겠다고 말린다"고 말했다.

◆ 기러기 아빠의 걱정=아내와 자녀 2명이 모두 워싱턴주에 있는 송모(50)씨는 "어젯밤 이후 수시로 인터넷 메신저로 대화하고 5번 이상 전화통화했다"며 "지금은 안전 문제가 제일 걱정되지만 앞으로 자식들이 미국 사회에서 곤경에 빠질지도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4년째 기러기 아빠 생활 중인 회사원 이경우씨는 "고1, 고3 두 아들에게 앞으로 현지 친구들에게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면 좋을지 e-메일을 보냈다"고 했다. 이씨는 상황이 나빠지면 아이들과 아내를 한국으로 부를 생각이다.

고1 아들을 미국 위스콘신주에 유학 보낸 김명미(44)씨는 "한 달간 몸조심하고 조용히 있다가 5월 방학하자마자 한국 들어오라고 했다"며 "아들 학교에서도 한국 학생들에게 몰려다니지 말고 자기 안전은 자기가 지키라고 지침을 내렸다"고 전했다.

박수련.이에스더.한은화 기자

◆ 미국 영주권과 시민권=조승희씨와 같은 한국인 미국 영주권자의 경우 국적은 대한민국이다. 반면 미국 시민권자는 한국계라도 국적은 미국이다. 미국에서 투표권은 시민권자에게만 있고, 영주권자에게는 없다. 영주권자는 대한민국 여권을, 시민권자는 미국 여권을 사용한다. 미국 영주권자(남성)는 우리나라에 6개월 이상 실질적으로 체류하면 병역 의무를 마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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