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학가에 모방범죄 경계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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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7일 버지니아공대에서 열린 총기 난사 희생자 추도식에 참석해 조의를 표하는 글을 남기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추도식에서 “오늘은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긴 날”이라며 애도했다. [블랙스버그 로이터=뉴시스]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여파로 미국 각급 학교에 보안 경계령이 내려졌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총격 사건은 유난히 모방 범죄가 많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폭발물 설치 등 허위 협박이 잇따랐다.

미 언론에 따르면 사건 다음날인 17일(현지시간) 텍사스 등 세 곳의 대학에 폭발물 설치 메모 등이 발견돼 캠퍼스가 폐쇄되고 학생들이 대피하는 소동을 빚었다. 텍사스주 오스틴의 세인트 에드워즈대에서는 구내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메모지가 발견됐다. 학교 측은 즉시 캠퍼스를 폐쇄하고 학생.교직원을 내보낸 뒤 수색 작업을 폈으나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테네시주의 테네시대에도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협박 전화가 걸려와 건물들을 폐쇄하고 수색했으나 폭발물은 없었다. 이 대학 척 캔트럴 대변인은 "협박 전화가 허위였을 가능성이 컸지만 버지니아공대 사건 이튿날인 만큼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다"고 밝혔다. 오클라호마대에서도 한 남자가 수상한 물건을 갖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으나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한편 전문가들은 총격 사건의 모방 범죄 발생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AP에 따르면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의 범죄심리학자 샌드라 로빈슨 교수는 17일 "충격적인 사건 뒤에는 모방범죄가 잇따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학과 직장의 경계태세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빈슨 교수는 "이번 사건이 1999년 컬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 8주년을 며칠 앞두고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캐나다에서는 지난해 9월 몬트리올의 도슨 고등학교에서 검은색 코트를 입은 범인이 학생들에게 총을 쏴 20명의 사상자를 내는 등 컬럼바인 모방범죄로 추정되는 사건이 여러 건 발생했다.

그러나 미국 대학들은 총기 범죄의 위험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할 방안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대학은 구내 경찰이 캠퍼스와 주변 지역을 순찰하고 위급 상황 시 경찰을 부르는 비상 전화망을 설치하고 있다.

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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