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공대 참사 현장 '죽음의 성'으로 변한 노리스 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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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공대 학생들이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뒤 대학 구내에서 서로 끌어안고 위로하고 있다. [블랙스버그 AP=연합뉴스]

16일 밤(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남서부 블랙스버그 소재 버지니아공대(버지니아텍). 멀리서 보이는 이 대학 공학부 건물 노리스 홀은 마치 '죽음의 성'처럼 보인다. 이날 오전 미국 최악의 캠퍼스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진 현장이다. '잔인한 달' 4월은 버지니아공대 학생들에겐 더욱 잔인했다. 밤이 되자 봄 답지 않게 기운이 뚝 떨어지며 냉기가 목덜미를 스친다. 공포와 전율이 느껴진다. 한 미국 기자가 "학생들이 캠퍼스에 모여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현장에 좀 더 다가가려고 하니 경찰이 또 막아선다.

"모자를 눌러쓴 범인이 갑자기 강의실로 들어와 건성으로 '안녕하냐(How are you?)'고 한마디를 내뱉곤 총을 갈겨대기 시작했다." 1000명이 넘는 이 대학의 한인 학생 중 유일한 부상자인 박창민(27.토목공학 석사과정 1년)씨는 사고 당시를 이같이 회상하며 치를 떨었다. 그의 증언이 이어졌다. "범인은 교수님을 먼저 쏜 뒤 그 다음 학생들을 향해 권총을 마구 갈겨댔다. 죽었다 생각하며 책상 밑으로 몸을 숨겼다. 한참이 지나 '정신이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라'는 소리가 들려 머리를 드니 15명의 학생 중 3명만 살아 있었다." 다행히 박씨는 총알이 팔을 스치는 정도의 경상을 입었다.

이 충격적인 사건에 인구 3만 명의 자그마한 대학 도시 블랙스버그는 참담함에 빠져들고 있다. 대학 인근 도로는 경찰차들과 취재 차량으로 뒤범벅이 됐다. 박씨 등 부상자들을 수용한 몽고메리 병원에도 경찰들이 정문을 가로막고 일반인의 출입을 봉쇄했다. "친구가 입원했다"며 달려온 톰(20)이란 학생에게 말을 건넸더니 "무슨 말을 듣기 원하나. 이런 참사가 터지는 미국 사회가 부끄러울 뿐"이라며 말을 흐렸다. 그의 뒤에 선 경찰차 라디오에서 "이 끔찍한 범죄에 미국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는 앵커 멘트가 흘러나왔다.

학생들과 주민들은 "학교 당국이 첫 번째 총격이 일어난 직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학교 측은 기숙사에서 2명이 숨지고 약 두 시간이 지난 뒤 e-메일로만 학생들에게 사건 내용을 간략하게 알렸다. 라이스 피셔(22 .대학원 행정학과 2년)는 "학교 당국이 e-메일을 보냈을 때 이미 범인은 2차 범행을 저지른 뒤였다"며 "학교 측의 늑장대처로 사상 최악의 참사가 빚어졌다"고 비난했다. 찰스 스티거 버지니아공대 총장은 "첫 총격 이후 추가 범행이 이어지리란 조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으나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낮 대학 측은 캠퍼스 전역을 폐쇄하고 17일까지 강의를 모두 취소했다.

블랙스버그=강찬호 특파원, 홍알벗.박진걸 워싱턴 지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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