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로드맵'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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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 좌담 참석자

▶김성태 한국노총 사무총장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상무
▶문무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사회=김정수 전문기자(경제연구소)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최종 방안(노사관계 로드맵)이 나왔다. 하지만 노사의 반응은 싸늘하다. 저마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이 많다고 한다.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올해 말까지 논의해 결론을 내달라"고 당부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합의는 고사하고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다. 오히려 로드맵을 두고 연초부터 노사대립만 격화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로드맵을 만드는 데 참여한 학자와 노사 당사자 간의 좌담회를 통해 의견을 들어본다.

▶사회=로드맵에 대한 반응이 노사 모두 안 좋아서 걱정입니다. 먼저 로드맵을 보는 노사의 시각부터 들려주시지요.

▶김성태 사무총장=전반적으로 노조의 힘이 강해졌다는 인식을 갖고 로드맵을 만든 것 같습니다. 노조의 힘이 세졌으니까 무력화시키기 위해 사용자 대항권을 강화하고, 노사의 자율권을 제한하려 한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동응 상무=솔직히 이 시점에서 왜 이런 로드맵을 꺼내 분란을 일으키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노사관계가 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시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의식과 관행이 문제입니다. 여론이나 현실에 대한 고려없이 법이나 제도로 바로잡으려 하면 안됩니다.

▶문무기 연구위원=노사 간 힘의 재편을 생각하고 로드맵을 만든 게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노사갈등이 경제발전의 걸림돌이 되면 안된다는 전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려면 법과 제도가 공정하고 정당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대로 당장 시행하라는 것이 아니라 논의와 검토의 기초를 제시한 것입니다.

▶사회=노동계가 "로드맵이 사측으로 기울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金=로드맵은 사용자의 대항권을 지나치게 보장했습니다. 예컨대 직장폐쇄 요건을 완화하고 대체근로도 허용했어요. 대체근로를 푸는 것은 집단적 노사관계를 뿌리째 흔드는 것입니다. 파업의 효과가 없어져 결국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이 무력화되는 것입니다.

▶李=대체근로를 금지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또 법에 있든 없든 공익사업장은 이미 대체근로를 해왔어요. 철도나 지하철에서 파업이 발생하면 군인들이 대체근로를 했잖습니까.

▶文=외국은 가급적 공공사업, 국민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에 대해서만 대체근로를 허용합니다. 프랑스는 민간기업이라도 대체근로를 하기도 합니다.

▶사회=임금문제에 대해서는 사측이 많이 반발하고 있습니다.

▶李=2007년부터 노조 전임자의 급여지급을 금지키로 여야가 합의했는데 이를 로드맵은 무시했습니다.

▶金=유럽은 산별노조 간부의 급여는 노조가 부담하고, 사업장 단위는 기업 규모별로 차이는 있지만 사용자가 냅니다.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는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주지 말라는 규정이 없습니다.

▶文=전임자에 대한 기본개념이 문제입니다. 전임자를 일 안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저항세력으로 볼 것이냐, 기업활동에 꼭 필요한 파트너로 볼 것이냐에 따라 다르다는 말입니다. 그동안 월급을 주던 관행도 고려해야 합니다.

▶李=통상임금에 상여금과 수당을 포함시키는 것도 문젭니다. 이렇게 되면 임금이 14.5% 인상됩니다. 기업은 벌써부터 부담을 걱정해 로드맵(road map)을 'load map'이라고 합니다.

▶사회=노사 모두 부당노동행위를 중단했으면 합니다. 로드맵에선 이 문제에 어떤 방향을 제시하고 있나요.

▶金=부당 노동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한 것은 불만입니다. 형사처벌 조항 자체가 사전 예방기능을 한다고 봅니다.

▶文=저희는 상습적이고 부도덕한 사용자의 경우에는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외국의 경우 민사로 해결합니다. 1백배, 1천배씩 소송을 걸어 돈을 받아가기 때문에 기업이 부당해고를 할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李=오히려 노조의 부당 노동행위를 함께 제재해야 합니다. 일부 강성노조의 경우 교섭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文=노사문제에 관한 한 탈 형벌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국가권력이 형벌이라는 기능을 이용해서 노사관계에 개입하는 것은 선진적 노사관계가 아니지 않습니까.

▶사회=필수 공익사업장의 분규와 관련해서도 일부 손질이 가해졌는데요….

▶李=필수 공익사업에 대한 직권중재를 없앤 것은 잘못입니다. 민간기업처럼 파업할 수 있도록 길을 텄어요. '최소 업무' 유지는 하도록 했다는데 이는 '최소 서비스' 유지를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외국의 경우 지하철이 파업해도 절반은 움직이게 합니다. 최소한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드맵은 중앙통제실은 돌아가게 한다는 식이에요.

▶文=직권중재가 지나친 규제라는 비판은 국내외에서 아주 많았습니다. 원칙은 노사가 합의해 국민에게 어느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를 정하라는 겁니다.

▶金=그 부분은 노조로서는 오히려 개악입니다. 노사 간에 어느 정도 서비스를 제공할지 합의가 안되면 노동위원회가 독단으로 특별조정에 나섭니다. 겉으로는 직권중재를 폐지한다지만 들여다보면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겁니다. 특별조정기간 중에는 파업도 못해요.

▶文=로드맵에서는 중재를 폐지한 것입니다. 조정은 오히려 강화했어요. 일이 벌어진 뒤 중재하는 것보다 조정으로 사전에 예방하자는 것입니다.

▶사회=노사 양측이 자꾸 대립적인 주장만 하고 있는데 로드맵에 평가해 줄 만한 내용은 없는 건가요. 시간이 별로 없는데 앞으로 어떤 식으로 합의를 이뤄낼 작정입니까.

▶金=일부는 긍정적인 것도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의식과 관행을 먼저 선진화시켜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선 손배.가압류 문제를 털어낸 뒤 일자리 창출 등에 대한 논의가 우선돼야 합니다.

▶李=로드맵에는 개혁 어젠다가 모두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논의는 하겠지만 노사 간 합의는 어려울 것입니다. 합의가 안되면 정부가 나서서 입법화하겠다고 하는데 이런 자세는 분명 도전을 받게 될 것입니다.

▶文=법은 최소화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 면에서 노사자율로 합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내 것만 찾으려 하면 안됩니다. 손해보는 것도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논의 시한이 연말이라고 정부가 얘기했는데 처음 만들 땐 시한을 못박지는 않았습니다.

정리=김기찬 기자<wolsu@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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