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즐거운천자문] 무턱대고 '쎄쎄쎄' 해선 곤란한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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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지도와 선호도는 광채가 다르다. 지지도는 마음이 기우는 것인 데 반해 선호도는 대체로 눈에서 결정된다. 눈길을 끄는 건 재미의 차원이지만 감동을 주려면 마음마저 뺏어야 한다.

지지율을 따져보는 대선 후보들의 심정은 시청률을 챙겨보는 PD들의 속내와 비슷할 것이다. 늘 초조하고, 늘 불안한 과정의 연속이다. "시청률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PD도 드물지만 설혹 그렇다 해도 믿어주기란 쉽지 않다.

PD로 성공하려면 안목이 좋아야 한다. 시청자의 마음을 읽는 독해력과 솜씨 있는 전문가를 고르는 분별력을 지녀야 살아남는다. PD를 감독이라고도 부르는 건 그와 함께 일하는 스태프를 감시도 하고 독려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PD는 국민(시청자)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목표가 비슷하다. 행복의 청사진은 공약과 기획안으로 제시된다. 프로가 기획대로 만들어지는지 꼼꼼히 따져보는 일은 선거 전후의 매니페스토운동과 일치한다. 시청률에 무심해선 곤란하지만 시청률 지상주의는 포퓰리즘으로 지탄받기 십상이다.

아이디어와 추진력은 리더의 필수 덕목이다. 방송사에 근무할 때 회의실 벽에는 무시무시한 경고문이 씌어 있었다. '아이디어가 없으면 나가 죽어라'. 그렇다고 PD가 반드시 아이디어의 창고일 필요는 없다.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을 가까이 두면 된다.

스태프나 네티즌이 던지는 이 말도 듣고 저 말도 듣다 보면 프로그램의 방향이 흔들린다. 포용력과 추진력의 충돌을 막아주는 힘이 바로 판단력과 설득력이다. 설득은 설교가 아니다. 스태프나 시청자를 가르치려 해서는 곤란하다. 설득은 글자 그대로 그 말을 듣는 자 스스로 이득이 있다고 믿게 해주는 힘이다.

판단이 서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드라마 PD가 현장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액션이다. 액션이라는 한마디로 카메라 앞의 모든 것이 움직인다. 하지만 액션 앞에 반드시 울리는 외마디 비명이 있다. 바로 스탠바이다. 스탠바이는 출발선 앞에 선 수영선수, 혹은 마라토너의 심정이 되라는 주문이다. 몇 백만이 지켜볼 텐데 긴장 안 할 도리가 있는가.

액션이 곧바로 OK로 연결되는 일은 드물다. NG는 필연적이다. NG가 두려워 액션을 망설일 수는 없으므로 충분한 리허설을 해야 한다. 부실한 프로그램은 리허설을 방불케 한다. 리허설은 관객(시청자) 없을 때 하는 것이다. 관객 앞에서 리허설한다면 웃음거리밖에 안 된다.

시청자의 지지도가 떨어지면 프로그램은 곧바로 퇴장한다. 드라마의 경우는 좀 다르지만, 그러나 길어봤자 몇 개월이다. 정치는 미니시리즈가 아니다. 후보도 유권자도 신중해야 한다. 채널 돌리는 일과는 구별해야 한다. 리더 역시 다양한 요구와 취향을 존중해야 하지만 그것 때문에 신념과 지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부화뇌동은 많은 걸 상하게 한다.

텔레비전이 이름값을 하려면 멀리(tele) 비전(vision)을 제시해야 한다. 정치도 방송도 마찬가지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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