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WTO에 제소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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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미국이 1백86억달러(약 22조3천억원) 규모의 이라크 재건사업 입찰에 프랑스.독일.러시아 등 반전국들을 제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들 나라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일부 국가는 "재건 비용을 못 내겠다"고 반발하면서 새로운 국제갈등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파문이 커지자 미 국방부는 11일로 예정했던 예비 입찰회의를 19일까지 연기했다.

미 국방부의 반전국 배제 결정은 폴 울포위츠 부장관이 지난 5일 서명한 총 1백86억달러 규모의 미 이라크 원조 및 재건기금(IRRF) 지출사업에 관한 '결정문'이 미 국방부 웹사이트에 10일 공개되면서 알려졌다. 결정문은 ▶이라크 전력▶통신.전신망▶상수도 복구▶이라크군 장비 사업 등 26개 분야 재건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나라를 한국.일본 등 미국의 이라크전 동맹국과 파병국 63개국의 업체로만 제한했다.

울포위츠 부장관은 결정문에서 "미국의 본질적인 안보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라크 재건사업 입찰경쟁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U 집행위원회는 즉각 성명을 발표해 "미국 정부에 이 같은 제한조치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해명할 것을 요청한다"며 "26개 계약 전반이 WTO 규범에 위배되는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2억2천5백만달러의 이라크 재건비용을 부담키로 했던 캐나다는 "입찰 제외는 캐나다의 이라크 재건비용 추가 지원을 힘들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WTO 협정은 공공사업 입찰과 관련해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으나 '도덕과 질서, 안보, 사람의 생명과 건강 등과 관련한 조치들'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0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등 반전국 정상들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 통로는 계속 열어두겠다"며 긴급 진화에 나섰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도 "입찰 배제는 미국 납세자들이 부담하는 재건사업에만 한정되는 것"이라며 "또 다른 국제기금에 의한 1백30억달러 규모의 사업에는 반전국들도 참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 국방부는 11일 "버지니아 덜러스 등 두곳에서 열릴 예정이던 입찰회의를 19일까지 연기한다"며 "장소와 시간을 이날까지 확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가 당장 "이라크의 80억달러 빚을 탕감해줄 수 없다"고 반발하는 등 미국이 추진 중인 '1천2백50억달러 규모의 이라크 과거 부채 탕감, 재조정 계획'도 벽에 부닥치게 됐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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