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는 苦行을 통해 무엇을 얻고 있는가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SUNDAY박찬호가 궁금하다. ‘사이먼 앤드 가펑클’이 ‘4월이 오면 그녀가 오네(April come she will)’에서 노래했던 것처럼 4월이면 우리 곁으로 찾아오곤 했던 그다. 시즌 개막에 맞춰 야구팬들의 가슴에 봄 아지랑이를 피어오르게 했던 그다.
아, 그의 동정과 경기성적은 궁금할 게 별로 없다. 그는 스프링캠프에서 기대 이하의 구위를 보여줘 메이저리그 개막 출전선수 명단에 들지 못했다. 한때 구원투수로 불펜진에 합류할 것이라는 말도 나왔지만 그렇지 못했다. 마이너리그에 떨어진 그는 지난 9일(한국시간) 트리플 A팀 뉴올리언스 제퍼스의 유니폼을 입고 잘 던졌다. 일부에서는 머지않아 메이저리그 선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궁금한 건 그의 심정이다. 그가 던지고 있는 공보다 그의 가슴속에, 그의 심장에 어떤 게 담겨 있을까다. 10년 넘게 메이저리그라는 화려한 무대에서 만인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그다. 한때 1년에 150억원의 연봉을 받았던 그다. 지금 그의 몸값은 한창 때의 2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10년 전의 자신보다 더 어린 선수들과 빅리그 진입을 놓고 벌이는 경쟁에서도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그는 어떤 심정일까.

마이너리그행이 결정되던 날이었다. 3월 31일이다. 그는 기다란 e-메일을 보내왔다. 그 글에는 스프링캠프에서의 좌절에 대한 후회가 담겨 있었다. 메이저리그 개막과 함께 세인트루이스 원정경기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아픔이 담겨 있었다.
그는 “캠프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단장과 감독, 셋이서 미팅을 했다. 나보고 이제부터 마이너리그로 가서 선발로 던지라고 했다. 구원투수로 메이저리그에 남을 줄 알았던 나는 미국에 온 뒤 처음으로 팀에서 버림받는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그 순간 세인트루이스로 오기로 한 아내와 딸이 생각났고, 내가 갈 수 없게 된 상황을 알려야 했다.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게 이런 거였다. 머리가 띵해지면서 긴장이 몰려왔다. 감독과 단장은 계속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데, 내 귀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라고 썼다.
그때 그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감독과 단장의 제안을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팀을 떠나든가 둘 중 하나였다. 그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깊이 생각했고, 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이렇게 썼다. “그래, 메이저리그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걱정은 이제 버리자. 내가 여기서 더 이상 잃을 게 뭔가. 왜 캠프 초반의 나는 후배 선수들(선발 경쟁자)이 잘 던질 때 초조해했는가. 왜 자신감을 버리고 두려움과 조바심을 선택했던가. 다 잊고 내려가 다시 시작하자.”

이처럼 처절하게, 냉혹하게 마이너리그로 갔지만 그는 오히려 편안해졌다고 한다. 지난 9일, 6이닝 무실점 호투로 희망의 빛을 보인 그는 전혀 다른 소식을 전해왔다. 후회와 아픔 대신 희망과 의욕이 충만했다. 그는 “집착을 버렸다. 꼭 뭐를 해야 한다는 것, 그게 나를 조바심으로 이끌었다. 이젠 아니다. 뚜벅뚜벅. 늦어도 황소걸음으로 간다. 앞으로 간다. 난 지금 즐거운 일을 하고 있다. 공도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마이너리그라는 고행을 통해 뭔가를 얻고 있었다. 조바심, 집착, 즐거운 일…우리는?

네이버스포츠팀장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