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Movie TV] 영화에 빠진 원작 & 원작과 다른 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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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의도였든, 제한된 상영 시간 때문이었든 '반지의 제왕' 3부작에는 원작 중 상당 부분이 포함되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편에 들어갔어야 할 톰 봄바딜의 이야기다. 반신(半神) '마이아'인 그는 절대 반지를 지니고 가는 프로도 일행을 두 번이나 위험에서 구해준 '천사표' 캐릭터. 1편이 나왔을 당시 많은 팬들이 뚱뚱하고 작달막하며 붉은 수염을 기른 친근한 이미지의 이 인물이 등장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다.

'왕의 귀환'에는 사악한 마법사 사루만(크리스토퍼 리)의 뒷이야기가 통째로 빠졌다. 원작에서 사루만은 자신의 근거지인 아이센가드가 무너진 뒤 호빗들의 고향인 샤이어로 간다. 그는 이곳에서 일부 호빗들을 현혹해 권력을 쥐려는 옹졸한 시도를 하지만, 결국 심복이었던 그리마 웜텅(브래드 도우리프)의 손에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의도적으로 원작을 바꾼 부분도 있다. 1편에서 프로도가 반지 악령의 칼에 찔린 뒤 말을 타고 도망치는 장면에서 요정 공주 아르웬이 그를 구출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원작에선 그렇지 않다. 프로도를 돕는 것은 글로르핀델이란 남자 요정이고, 홍수를 일으켜 악령들의 추격을 막는 것은 아르웬의 아버지인 요정왕 엘론드(휴고 위빙)다.

슬쩍 암시만 주고 넘어간 부분도 있다. 3편 마지막에 파라미르(데이비드 웬햄)와 에오윈(미란다 오토)이 함께 있는 장면이 그렇다. 원작에서 둘은 결혼한다.

관객들이야 재미만 있다면 상관없을 수 있지만, 이는 원작자 톨킨이 알았다면 그야말로 기절초풍할 일이다. 톨킨은 생전에 '반지의 제왕'에 대해 "이 작품은 내 생명의 피로 쓴 것"이라며 "단 한 글자의 수정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1955년 BBC가 이 작품을 라디오 드라마로 만들었을 때도 그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드라마"라며 화를 냈다. 할리우드 영화사들의 수차례에 걸친 영화화 제의를 모두 거부한 것은 물론이다. 올해 초에는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에 협조하는 문제를 놓고 톨킨의 유가족 간에 갈등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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