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활력을 잃고있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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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 경제가 난국을 뚫고 나갈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기업의 활력상실과 경영악화를 말해 주는 징표들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기업경영의 알찬 내실이 튼튼한 산업경쟁력의 핵심을 이룬다는 점에서 이러한 현상은 실로 걱정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작년 한햇동안 부도를 낸 기업의 수와 부도금액은 재작년에 비해 엄청나게 불어났다.
부도업체수가 50%,부도금액이 2배이상 늘어났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특히 주목되는 것은 산업부문별 구성에 있어서 제조업체의 부도 증가율이 유난히 높고 내수업체 보다 수출업체의 부도 증가율이 더 높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1억원이상의 대형 부도금액이 전년도보다 4배나 증가했다는 것도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국내외 경영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발맞추어 이에 상응하는 산업구조조정이 발빠르게 이뤄져야 한다는 필요성을 생각하면 그같은 산업구조 조정과정에서 사양업종 기업의 도태가 일정범위안에서 진행되는 것은 산업의 원활한 신진대사를 통한 체질강화라는 긍정적 측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작년의 부도급증이 그런 과정의 소산에 불과한 것이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업계전반을 강타한 악재들이 부도급증에 직접·간접으로 연관돼 있다는데 있다. 극심한 자금난과 인력난,고금리와 고임금,그리고 수출부진 등이 한꺼번에 겹치지 않았던들 부도기업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작년에 휴업·폐업한 중소기업수가 5년만에 최다를 기록했다는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결과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된다.
작년의 기업경영악화를 초래했던 요인들은 금년에 들어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고 따라서 대량 부도사태의 위험은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고 봐야 옳다. 기업경영을 악화시키는 환경요인들은 정치적·사회적 성격을 지닌 것도 있고 경제정책에 의해 좌우되는 부분도 작은 것이 아니지만 부도사태에 대한 1차적 책임은 두말할 것도 없이 기업 자체에 있다.
높은 금리와 빠른 임금상승에 기민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도 기업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외국기업들에 비해 유난히 높은 부채비율을 보이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재무구조는 역경극복에 매우 불리한 약점이 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기업부도가 확산되면 기업들이 기술개발과 투자에 몸조심 일변도로 움츠러드는 경향을 보이기 쉽다.
금년에 들어와 기업들의 소극적 자세는 업계의 여기 저기서 목격되고 있다. 왕성한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도 달성하기 힘든 산업경쟁력 강화가 이런 분위기속에서 이뤄질 수 없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럴수록 업계의 침체분위기를 경제정책을 통해 타개할 필요성이 그만큼 커진다. 무엇보다 기업전반의 금융비용부담을 줄여주는 금리인하와 거추장스런 행정규제의 장애물들을 걷어내는 작업은 정부가 꼭 추진해야할 시급한 과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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