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 민주 국민/경력 바람 조직 삼파전(총선 열전현장:3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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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 거물투입에 야 공천자 교체/무주­진안­장수
전북전체면적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무주­진안­장수지역은 속칭 「무·진·장」이란 이름처럼 「무진장 넓고 험한 산간」인지라 선거운동하기도 「무진장」어렵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얼마나 많이 뛰느냐」가 당락의 최대관건이며,정치초년병이 섣불리 발들여놓기 힘든 지역. 민주당공천을 받았던 안탁씨가 공천을 반납한 곳이기도 하다.
호남 교두보마련을 위해 중량급으로 민자당이 내놓은 황인성 아시아나항공회장(전농수산부장관)의 선거본부는 9인승패밀리 지프다. 12일 오후 3시차속에서 참모들과 구수회의를 계속하는 동안 지프는 굽이굽이 산길을 지나 장수군 계북면 덕유산기슭의 한 자연부락에 도착했다.
『장관님이 11대의원때 시작해 놓은 양악제공사가 아직 안끝났네요.』
마을어귀에 내려서자마자 만난 농민유권자는 민원부터 쏟아 놓는다.
『그거 완공하라고 날 다시 불렀구만.』
황후보는 싫지 않은 표정으로 방긋 웃는다.
같은 시간국도따라 몇굽이 산길을 넘어선 무주군에서는 오상현 민주당후보(전의원)가 면단위 얼굴알리기에 한창이다. 『제가 다시 무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11대때 이 지역에서 당선됐다가 13대에는 서울 은평구로 옮겨 낙선했던 오후보는 어렵게 따낸 민주당공천을 자랑하며 「환향」을 강조한다. 오후보는 당초 민주당공천에서 탈락했다가 선거일공고 전날인 지난 6일 지역기반이 약한 정치 신인 안탁씨의 후보사퇴로 어렵게 공천을 따냈다.
『진작 받았어야 했는데이…. 어쨌든 이번에도 민주당인께 걱정마시오.』
굵은 주름의 촌부는 「골수야당」임을 자부했다. 「호남」이라는 지역세를 믿어 한숨돌린 오후보는 침실겸용인 승용차 뒷좌석에 몸을 싣고 이웃부락으로 옮기는 사이 눈을 감고 선잠을 청한다. 하지만 16일부터 시작될 합동유세에서의 연설문을 구상하느라 부족한 잠이 끼어들지 못한다.
현역의원으로 민주당공천에서 탈락하자 단식농성까지 했던 이상옥 후보는 국민당으로 갈아타고 새출발해 재선을 호소한다.
진안읍 한가운데 위치한 특산물 수삼도매센터에 들어서면서 『누님,손좀 잡아봅시다』라며 가게아주머니의 손을 덥석 잡는다.
『밀어줄라면 끝까지 밀어줘야죠. 이번에 한번더 부탁합니다.』
읍내를 지나칠때마다 몇차례인사가 있었는지라 도매상인들이 모두 「잘안다」는 눈치다.
호남전체에서 무진장지역이 가장 주목받는 것은 13대에서 황색바람에 싹쓸이 당했던 여당이 「호남진출의 전략지구」로 심혈을 기울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당은 고심끝에 정치일선을 물러났던 황인성씨를 다시 영입,전쟁에 투입했다. 황후보는 최장수 전북도지사로 지역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11대 당시 지역구에서 당선된데다 교통·농수산부장관까지 역임해 「농민들의 맏형」이라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지역은 유권자중 80%가 농민이다. 지사와 장관시절 신경을 써둔 지역사업도 훌륭한 득표요인이다.
그렇기에 민주당도 공천자를 교체하는 고육지책을 쓸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현역인 이상옥 의원도 20년간 갈아온 텃밭을 쉽게 내놓을 수 없다. 「무소속으로는 선거운동자체가 어렵다」는 참모회의결과에 따라 국민당적을 걸었지만 조직은 민주당시절부터 다져온 그대로다. 12일에도 민주당 군의원 2명과 조직원 70여명을 국민당쪽으로 끌어오면서 기자회견을 통해 「건재」를 시위했다.
팽팽한 정립상태인만큼 삼각구도속의 긴장된 열기가 산간마을의 봄을 달군다.
황후보의 선거운동은 새벽 6시 전화로 시작된다.
『황인성입니다. 삼농사는 잘 되는가요….』
지역에서 보고된 여권표를 간단한 아침인사로 다져놓는다.
공교롭게도 같은 아파트 옆동이 오후보의 숙소다. 오후보는 잠이 없기로 유명하다. 새벽 5시 운동복차림으로 뒷산을 간단히 돌아나온뒤 곧장 마이산 입구로 달려간다.
지역에 가장 뿌리가 깊다는 이상옥 의원은 새벽 6시 진안읍 집근처 우화형 약수터를 먼저 찾는다. 이후 오후 10시까지 면단위 순회에 나서며,빈자리는 부인과 부친이 메워준다.
황·오후보측은 이후보가 수뢰혐의로 구속됐던 사실을 흘리고 있으나 이후보측은 정부의 탄압에 희생된 것이라고 오히려 맞받아 치고 있다.
여권에서 포섭한 거물후보,바람을 믿고 있는 민주후보,민주당공천에서 탈락한 국민당소속 현역의원, 호남총선을 상징하는 삼각구도다.
여전히 호남은 「김대중 바람이 얼마나 불 것인가」가 최대변수다. 지금까지는 13대와 같은 태풍은 불지 않을 것이라는게 지배적인 관측이나 투표일까지 그럴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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