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들의 거부권 행사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역대 2551건. 4선을 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무려 635번, 클리블랜드도 584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중 상당수가 예산법안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거부한 37건도 대부분 '포크 배럴 예산'이었다.
로마 호민관은 원로원이 만든 법을 비토(거부)할 수 있었다. 미국의 대통령도 그런 권한을 받았다. 미 의회가 법안을 넘기면 10일 이내에 이유를 달아 발의 의원에게 돌려보낼 수 있다(환부 거부). 의회가 다시 의결하려면 상.하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 의회가 휴회 중이어서 10일 이내에 돌려보낼 수 없다면 그냥 폐기할 수 있다(보류 거부). 재의를 못 한다고 '절대적 거부', 대통령이 주머니에 넣어버린다고 해서 '포켓 거부'라고도 한다.
한국에서는 15일 이내에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보류 거부나 '부분 거부(line-item veto)'는 허용되지 않는다. 재의결 요건은 재석 3분의 2의 찬성. 제헌국회 이후 거부권이 행사된 것은 67번. 이승만 대통령이 거부한 양곡매입법안 등 45건은 대부분 재의결됐다. 1961년 4월 이후 국회에서 원안이 재의결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비리 특검법이 처음이었다. 박정희 시대에는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겨우 4건. 국회를 확실히 장악했기 때문이다. 여소야대가 된 노태우 정부 때 7건이 거부돼 모두 수정의결됐다.
최근 노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검토한다고 한다. 국민연금법 개정안과 한 묶음인데 따로 통과돼버린 기초노령연금법 때문이다. 65세 이상 노인 60%에게 세금으로 매달 8만9000원씩 주겠다고 한다. 한나라당은 한술 더 떠 80%에게 18만원씩 주도록 다시 고치겠단다. 돼지 비계 나눠 주기 세금 잔치에 누구 등골이 빠지는지는 모르쇠다. 다행히 6정파가 이달 중 국민연금법을 고치겠다니 지켜볼 일이다. 바로잡지 못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거부권 대상이다.
김진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