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리더들의 눈치보기/전 육(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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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4대총선은 시간이 갈수록 지역감정과 대권문제가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은 양상이다.
「민주대 반민주」의 전통적 바람몰이 선거운동방식은 초반부터 야당에 의해 스스로 약효없음이 선언됐다. 대신 경제실정과 지도자의 도덕성,거여에 대한 견제심리를 득표의 핵심요인으로 부각시키려 애쓰고 있으나 유권자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권력과 정당,그리고 지도자들의 도덕성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워낙 깊게 고루 확산된 탓인지 웬만한 목청으로 내말이 옳소라고 해봐야 별로 귀를 끌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역감정을 무기로
그게 그것이란 냉소와 정치적 허무주의가 팽배한 분위기에서 정강정책이나 인물됨됨이의 차별성을 내세워 시선을 끌기는 여간 어렵지 않게 되어있다. 이런 분위기를 손쉽게 벗어나는 탈출구로 지역감정과 대권문제가 활용된다.
선거에서 원초적인 지역감정의 배타성과 친밀성을 편리할대로 이용하는 것은 손쉽게 쓸 수 있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 모두 마찬가지다. 김영삼·김대중씨가 대통령선거 예비전인것처럼 전국을 헤집고 다니니 지역감정은 대권경쟁에 의해 상승작용이 일어난다.
두김씨 추종자들은 자신의 존재와 보스의 정치적 장래를 한묶음으로 득표활동을 벌인다. 지역감정을 밑바탕에 깐 대권문제가 총선경쟁의 끼워팔기로 관심을 끌자 양김진영이 아닌 다른 편에서도 대권세일즈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먼저 중부권 역할론으로 홈그라운드(충청)제압을 시도했던 김종필 최고위원은 세몰이가 생각만 못했던지 최근 고향 부여에서 대권경쟁에 나설 의향을 밝혔다. 또 전국구 후보인 박태준 최고위원은 직접 유권자를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때문에 겉으론 노골적인 대권표방을 않고 있지만 사실상 당내경선을 전제로 지역구를 돌며 상당한 물량공세도 하고 있다.
이밖에 이종찬 의원이 대권도전을 선언했고 김복동·박철언 의원도 「큰일」할 것이라는 점을 홍보전략으로 집중활용하고 있다. 선거전이 본격화하면 이들의 대권계획은 좀더 구체적이고 강도높게 표출될지도 모른다.
민자당밖에서는 국민당의 정주영씨와 신정당의 박찬종씨가 대통령출마를 거의 공언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렇게 됐으니 이번 선거가 국회의원선거인지,대통령선거인지 헷갈린다는 말이 나올만도 하다. 희망은 공짜라니 누가 어떻게 대권을 득표수단으로 이용하든 간섭할일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권은 물론 많은 유권자들이 두김씨를 뺀 나머지 사람들의 「희망사항」에 대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세확장 위한 수단
그중 몇명의 속셈은 차차기를 노리거나 턱도 없는 줄 알면서 자신의 의원당선,또는 세확장을 위한 수단으로 대권을 거론한다고 보고있다. 지방색,아니면 대권이라도 외쳐야 주변에 사람이 꼬이더라는 고백같은 것이 엿보인다.
이들에겐 대권이 밑져봐야 본전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국민을 상대로한 정치지도자를 꿈꾼다면 행동동기와 접근방식이 지금보다는 좀더 진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두김 이후의 차세대 지도자가 어차피 나오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민자당의 차세대 지도자를 꿈꾸는 그룹들은 지금까지 대체로 노태우 대통령이 총선후 당내경선에서 김영삼 대표를 밀어주지 않거나 방관하는 사태를 상정해 대타가 될 것을 노려왔다. 이들은 두김퇴진론에 대한 넓은 공감대가 바로 뉴리더등장의 필요조건이며 그 여건이 무르익어 간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김영삼 대표측은 총선후 노대통령의 선택은 대권을 자기네에게 주느냐,내팽개치고 물러서 있느냐만 남았지,아무리 대통령이라도 불과 몇달새에 대타를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노­김간의 승계를 장담한다.
차세대가 명실상부한 대권 도전자가 되려면 두김씨에 대한 혐오분위기란 필요 조건만으로는 부족하다. 충분조건까지 갖추어야 한다. 그러면 충분조건은 어떤 것일까.
첫째,양김이 왜 안되느냐보다는 내가 왜 나서야 하느냐를 온몸을 던져 보여주어야 한다. 국회의원선거 편하게 치르기 위해 냄새 피우는 정도로는 어림없다.
둘째,이 단계에서 노대통령의 선택권안에 들어가겠다는 자세만으로는 아무것도 성취할 것이 없다. 섣불리 나섰다가는 꺾인다는 두려움부터 버려야 한다. 노대통령이 민정계를 챙기는 것이 일정기간 김영삼 대표를 견제하고 다른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려는 의도일지 모르나 대세가 여의치 않을때 YS에게 힘을 몰아줄 준비일수도 있다는 면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부지리론 곤란
셋째,뉴리더는 정치를 늦게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참신한 것인양 오산하지 말아야 한다. 그 자신이 과거 무엇을 했으며,현재의 경륜과 비전이 두김보다 어떻게 앞서거나 따라잡을 수 있음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 60%가 양김퇴진에 동조하지만,70%가 대통령선거에서 양김이 대결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 또한 현실임을 직시해야 한다.
어디 밉보일까봐 망설이거나,낙점이나 기다리는 사람을 국민이 지도자로 생각하겠는가. 전 인격을 던져 국민을 향한 경쟁을 할 각오를 나타내 보여야 한다. 지도세력내 역학관계나 상황의 어부지리를 업고 지도자로 불쑥 솟아날 수 있었던 시대가 이제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음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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