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소평 개혁추진에 앞장/중국보수파 대거 퇴진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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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체제유지 자신얻은 등의 결단/보혁균형 깨져 보수저항 예상/이달 전인대와 가을 당대회서 결판
중국 정치의 보혁구도에 재편 바람이 일고 있다. 89년말 모든 공직에서 은퇴했던 중국최고실력자 덩샤오핑(등소평)이 최근 개혁·개방정책을 다시 고취하고 나섬으로써 천안문사태이후의 보혁간 형평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중국 정치판도의 재편은 오는 20일부터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가을께 개최될 14차당대회에서 보수세력이 퇴조하고 개혁파가 득세하는 방향으로 귀결될 전망이다.
중국관측통들은 벌써부터 보수세력의 우두머리 천윈(진운)이 이끄는 중앙고문위의 철폐,리펑(이붕)총리의 거취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이들은 아울러 당조직부문책임자 쑹핑(송평),인민일보사장 가오디(고적),당선전부장 왕런즈(왕인지),문화부장대리 허징즈(하경지),보수파이론가 덩리췬(등력군) 국가교육위원회의 허둥창(하동창) 등의 교체를 점치고 있다. 등은 극히 이례적으로 지난 1월19일부터 지난달 20일에 걸쳐 남부 경제특구를 순시한뒤 개혁·개방의 가속화를 촉구하는 「강화」를 발표,개혁정책 정착을 중국의 제1과제로 부각시켰다.
이는 천안문사태이후 유지돼 온 중국의 보혁 균형을 깨는 것으로서 보수파의 저항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한 사례로 관영 인민일보를 들 수 있다. 등의 지방순시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인민일보는 평소의 보수적 논조를 바꾸어 지난달 9일부터 대대적으로 개혁·개방을 찬양하는 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이는 보혁간의 대립이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등 노선의 향방에도 저항요소가 잠복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89년의 천안문사태이후 자본주의 세력의 평화적 수단에 의한 사회주의체제전복(화평연변)을 경계해온 보수세력은 경제건설을 중핵으로 하는 등 노선이 체제유지차원에서 이용내지 감내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따라서 등소평이 개혁·개방을 다시 고창하고 나선 것은 시기적으로 체제유지에 더이상 위기감은 없으며 오히려 안정기조 위의 개혁·개방만이 사회주의 중국이 유지·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라는 정치적 결단을 내렸음을 의미한다.
등소평이 『경제건설만이 유일한 중심이며 제2의 중심이란 없다. 화평연변을 매일같이 되풀이 할 필요는 없다』고 보수세력을 비판한 것도 이같은 대세인식에서 비롯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등에 대한 보수세력의 견제를 당지도부의 권력투쟁으로 보는 것은 확대해석일 수도 있다.
등의 권위나 노선에 대해 정면에서 공개적으로 도전하는 움직임이 아직 미미한 상태에서 정치개편은 실무차원에서의 개혁파 득세 정도의 판도변화에 한정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상해방」과 같은 적극적인 사고에 의한 과감한 개혁·개방을 북돋우는 선전활동과 교조주의·관료주의·부패 등을 몰아내자는 운동이 오히려 주된 문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개혁·개방작업의 본격한 단계에서 반동적으로 출현하는 보수세력의 실체는 중국 보혁갈등의 역사적 경험에서 수시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선 개혁·개방파의 원류는 1956년 중공당 제8차대회에서 있은 류사오지(유소기)의 「정치보고」로 소급된다.
유소기는 이 보고서에서 『중국에서의 대규모 계급투쟁은 끝났으며 중국의 주요모순은 날로 증대하는 인민의 물질문화요구와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낮은 수준의 사회생산력에 있다』고 지적했었다.
이는 등소평·자오쯔양(조자양)체제의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에서 그대로 답습됐으며 지난해말의 중공당13기 8중전회에서의 결의내용과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보수세력은 마오쩌둥(모택동)이 제기한 「사회주의 실현을 위한 영구혁명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모는 1957년 반우파투쟁을 벌이면서 『중국의 주요모순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무산계급과 자본계급간에 어느 쪽이 승리하느냐 하는 문제』라고 제기했다. 그결과 총노선·인민공사·대약진·문화대혁명등 일련의 정치적 혼란과 시행착오가 뒤따랐다.
신중국이 국영경제·개인자본주의 경제등 다양한 경제요소를 토대로한 신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출범한 이래 보혁간 대결구도는 50년대중반 이후 등장,모·유권력투쟁을 거치며 심화됐다.
이같은 중국의 보혁구도를 지금의 개혁·개방파와 보수파 양립구도에 대응시킬 경우 「물질적 수요와 생산력의 낙후」「외국자본주의 세력에 의한 사회주의 중국의 전복」을 각각 주요 모순점으로 설정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평균 「5년에 1회」꼴로 치러야했던 중국정치상의 혼란과 이로부터 초래된 엄청난 인적·물적 손실은 결과적으로 보수세력의 정치기반을 잠식,개혁·개방을 대세로 판정짓게 했다.
더구나 개혁·개방이 당내의 공동인식과 함께 광범한 사회적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모·유시대부터 갈라진 중국정치상의 보혁구도는 등소평 노선 안으로 통합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등소평의 지도력에 보수세력이 어느정도 저항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오는 14차당대회는 개혁·개방의 단합과 인사쇄신의 대회로 전망되고 있는 만큼 어느 당대회보다 역사적 비중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홍콩=전택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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