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PGA투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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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 시절 수도권의 한 골프장에서 홀인원이 나왔다. 대부분의 골퍼가 평생 꿈만 꾸다 마는 홀인원을 기록한 이 골퍼는 기뻐하기는커녕 즉시 경기를 그만두고 골프장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당시 공무원 골프 금지령 때문에 골프를 좋아하는 공무원들은 가명(假名)으로 골프를 치곤 했었다. 공무원이었던 이 골퍼는 홀인원으로 골프를 쳤다는 사실이 탄로날까 두려워한 것이다. 당시 과천 관가에서 화제가 되었던 일이다. 1998년 박세리의 US오픈 우승으로 골프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외환위기로 침울했던 국민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안겨준 박세리의 우승으로 시골 할머니들까지 골프를 알게 되었고, 골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다소 줄었다.

골프 애호가들은 영어 머리글자를 따 풀밭(green)에서 산소(oxygen)를 마시고 햇볕(light)을 쪼이며 다리(foot)로 걷는 운동이 골프라고 예찬한다. 골프의 기원에 대해 로마 제정(帝政)시대의 파가니카라는 설, 네덜란드 어린이들이 즐겨 하던 코르프라는 설, 스코틀랜드의 양치는 목동들의 민속놀이가 발전했다는 설 등이 있다. 골프는 영국, 정확하게는 스코틀랜드에서 번성했다. 1457년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2세가 무술과 궁술의 훈련에 방해된다고 골프를 금지할 정도였다.

현재 세계 골프의 중심은 최경주가 활약하고 있는 미국 PGA투어다. 올해 PGA의 48개 대회 총상금은 2억2천5백만달러(약 2천7백억원). 골프 본산 유럽의 EPGA 상금이 1억2천4백만달러며, 여자 대회인 LPGA의 상금이 3천9백23만달러에 불과하다. 6승을 거둔 LPGA 1위 아니카 소렌스탐의 상금(1백91만4천달러)보다 올해 PGA 우승이 없는 랭킹 30위 최경주(1백99만9천달러)가 더 많은 상금을 받은 데서 PGA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나상욱(20.케빈 나)이 엊그제 한국인으론 두번째로 내년 PGA 전 경기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헝그리 골퍼인 최경주와 달리 8세 때 미국으로 건너간 나상욱은 아마추어 무대를 주름잡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타이거 우즈의 코치인 부치 하먼의 제자로도 유명하다. LPGA를 박세리.박지은.한희원.김미현 등이 휩쓴 데 이어 최경주와 나상욱이 PGA를 평정할 날이 기대된다. 툭하면 골프 금지령이 내려졌던 나라로선 대단한 성과다.

이세정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