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의 생활지혜-조선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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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지난번 설날을 앞두고 나는 혼자 몸과 마음이 바빴다. 새식구 며느리를 들이고 나니 집 안팎을 새삼 둘러봐 청소하고 정리하게 된다. 우선 아이들 방을 정리하고 이부자리를 뜯어 빨고 꿰매느라 이틀을 보냈다.
다음은 안방에 눈을 돌려 이부자리를 정리하려고 장문을 여니 이번에 며느리가 해온 것까지 이부자리가 장안 가득이다. 옆에 와 계시던 친정어머니가 『얘, 저렇게 꽉꽉 채워놓으면 이불이 잠자서 어떡하니? 당장 쓸것만 정리하고 새 이불은 위로 얹어라』하신다.
이부사리를 얼른 다 꺼내 장 속을 깨끗이 닦고 헌것은 밑에, 새 것은 이불보에 싸 장 위에 얹어 정리했다.
지켜보시던 어머니가 『얘, 그렇게 정리해 놓으니 이불도 좀 숨을 쉬지 않겠니. 그렇지?』하신다.
순간 나는 아 ! 어머니 !
당신께서는 어느 문필가도 흉내낼 수 없는 그 아름다운 말을 체험에서 우러나 하시는군요. 이불이 숨을 쉰다니, 나는 가슴이 뜨거워 왔다.
그러면서 항상 내가 바쁠때 도와주며 우리에게 배꼽을 쥐게 하는 일흔이 넘은 사촌언니가 가을의 짧은 해를 『중의 머리에 녹두알 굴러가듯』이라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동의보감에 「엄동엔 한여름 따가운 햇볕 속의 양기를 띤 쌀밥을, 한여름에는 눈구덩이 속의 음기를 띤 보리밥을 권하는 것은 음양의 조화를 이뤄서 신체의 균형을 지킨다」는 구절도 옛 어른들이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느낀 생활체험을 집약한 것임을 절감한다.
이분들이 안 계신 훗날 나는 언젠가 남편이 웃으며 한 말처럼 어머니 무덤 앞에 가서 『어머니 김장 들여왔는데 어떡하지요? 도와주세요. 김장은 혼자 못하잖아요 네?』하게 되지 않을까.
머지않아 우리에게도 다가올 그날에 대비할 수 있는 체험을 과연 우리는 하고 있는 것일까.
내 후손들에게 줄 그 어떤 생활의 지혜를 과연 쌓고 있는 것일까.

<서울동대문구전농 1동402의2호 27통4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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