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가락으로 한국혼 알릴래요”/뿌리잊은 사람 잠 깨울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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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서울대 유학온 재일동포 「국악 3남매」의 졸업식
『장차 교포사회에 「한국의 혼」을 심어주기 위해 국악과를 지원했어요.』
일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친 재일동포 3세 3남매가 모두 서울대에서 국악을 전공,가야금 전공으로 지난해 졸업한 누나에 이어 피리를 전공한 남동생이 올해 졸업하게 됐다.
화제의 주인공은 26일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하는 민성치군(23).
민군 가족은 누나 미화양(24)이 가야금 전공으로 지난해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했고 동생 영치군(21)도 현재 국악과에서 대금을 공부하고 있는 「재일동포 서울대 국악가정」으로 무국적 외래문화에 멍들어 있는 우리사회에 신선한 자극이 되고 있다.
『작고하신 할아버지가 35년 고향인 경북 김천을 떠나 도일,봉제공장 근로자 생활을 하셨어요. 그후 40년 오사카에서 태어나신 아버지는 일본인이나 귀화한 교포들의 유형무형의 압력속에서도 「조상의 뿌리」를 잊어선 안된다며 우리말을 사용하고 민요를 부르셨습니다.』
민군이 서울대에 입학한 것은 87년.
전공은 누나의 가야금,남동생의 대금,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한국 무용을 배우고 있는 여동생 유미양(19)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부모님과 상의한끝에 피리를 택했다.
처음에는 환경도 낯선데다 「우리말」이 서툴러 적응하기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레슨을 받는것 외에 하루 4시간이상씩 연습에 몰두하는등 각고의 노력끝에 2학년때부터는 동료들과 어깨를 겨루며 「보조」를 맞출수 있게 됐다.
『피리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완전 소화한뒤 일본에 있는 가족들과 합류해 밑둥지가 흔들리고 있는 교포사회에 한국문화의 정수를 보여주고 싶어요.』
민군은 졸업과 함께 KBS국악관현악단 등에 일자리를 알아본뒤 「실력」을 더쌓아 내년에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다.
『막내딸까지 한국에서 무용공부를 한뒤 일본으로 건너오면 민요를 조금 할줄 아는 저를 포함,「가족국악단」을 만들어 교포사회를 순회하며 민족정기를 불어넣겠습니다.』
오사카시 미시나리구에서 「식도원」이라는 한식집을 경영하고 있는 아버지 민성기씨(52)는 맏아들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내한,26일 졸업식에는 꼭 참석하겠다고 했다.
『요즈음 국내에서도 국악을 하려는 학생들이 드뭅니다. 교포3세 3남매가 조상의 맥을 잇겠다며 국악을 수도하는 정성이 너무 갸륵해요.』
국악과 김정자 학과장의 말이다.
『피리는 불면 불수록 그윽한 풍치가 있고 우리 조상의 한이 서려있다는 생각이 들지요.』
현재 서울 성산동 유원아파트를 전세내 남동생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민군은 『졸업이 하루라도 더 늦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오영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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