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들 "부장님보다 멘토가 좋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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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김회룡 기자

입사 17년차 김준호 부장(43)은 얼마 전 한 후배의 전화를 우연히 엿듣고는 화들짝 놀랐다. 입사한 지 석 달이 채 안 된 그 신입사원은 친구로 짐작되는 통화 상대에게 이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내일 회사 출근하는 게 무슨 상관있어? 기분 내키면 퍼마시는 거지." 직속상관인 자신이 듣고 있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거리낌이 없었다. 자신이라면 회사 내에서, 적어도 상관 앞에서 도저히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

김 부장은 "그 대화를 듣고 나서 이 신입사원이 무례할 뿐만 아니라 무책임하다는 선입견을 지울 길이 없다"고 말했다.

김 부장 또래 가운데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이 많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모든 신입사원이 자신들이 신입사원이었던 시절보다 더 무례하고 무책임하다고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입사원들의 입장은 정반대다. 그들은 자신의 직속상관인 회사 간부들이 지나치게 위계질서만 고집한다고 여긴다.

지난해 초 한 중견 미디어그룹에 입사한 이성희씨(26)는 회식 자리에서 사장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가 다음날 상관인 홍보실장에게 사장한테 그런 무례한 말버릇이 어디 있느냐며 호되게 당했다. 이씨는 "가장 높은 직급을 가진 동료일 뿐인 사장을 마치 하늘처럼 떠받드는 상관이 역겨웠다"고 말한다. 그는 결국 입사 6개월이 채 안 돼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다양한 세대가 모인 조직인 기업에서 세대간 갈등은 늘 존재해왔다. 이러한 갈등은 신입사원의 조기퇴사로 이어져 기업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온다. 구인 정보 전문업체 잡코리아의 최근 조사 결과(2007년 1월)에 따르면, 신입사원 가운데 1년 안에 퇴사하는 직원의 비율이 30.1%로 10명 가운데 3명꼴이다. 대기업은 13.3%로 그나마 신입사원의 조기 퇴사율이 낮은 편이지만, 중소기업은 31.7%에 이른다. 조기 퇴사를 결정한 대부분의 신입 사원들은 '세대갈등에 따른 조직 적응'을 그 이유로 꼽는다.

기업문화 전문가들은 이러한 갈등 고조의 원인에 대해 "우리 역사상 가장 개성이 강하다는 N세대가 본격적으로 기업에 입사하기 시작한 것이 그 이유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기업의 중간 간부 이상은 대부분 베이비붐 세대가 포진하고 있다. 기업 내 세대 갈등에 대해 연구한 딜로이트컨설팅의 김경준 전무(44)는 "우리 기업들 안에서 일종의 문명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야 할 정도"라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신입사원, 특히 N세대 신입사원을 어떻게 하면 조직에 안착시킬 것인가가, 인사 관리 담당자들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신입사원 한 명을 뽑을 때 드는 막대한 비용을 감안하면 기업으로서는 당연한 결과다.

이에 대해 기업들은 '멘토제'를 대안으로 삼고 있다. 멘토제를 실시하고 있는 기업으로는 CJ가 대표적이다.

CJ는 현재 대졸 신입사원 대상으로 멘토제를 운영해 성공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계열사와 상관없이 그룹전체에서 선발된 경력 3 ̄7년차 직원들이 멘토가 되어 정기적 면담 등을 통해 신입사원들과 소통한다. 지난해 하반기에 입사한 이가연(27.가명)씨는 "멘토제가 있어 조직 초기 적응에 많은 도움이 됐다"면서 "비슷한 문화를 공유한 같은 세대의 선배들과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CJ인터넷 인사실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실시해온 멘토제가 신입사원들의 조직 적응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 "멘토가 될 사원들에게 전문적인 상담교육을 실시하는 등, 제도를 조금씩 보완해 확대 시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멘토제는 베이비붐 세대와 Y세대(우리나라의 N세대에 해당)의 갈등을 앞서 경험한 미국 기업에서 먼저 실시됐다. 미국 기업들 사이에서도 멘토제는 세대간 갈등 해소에 가장 효과적인 제도로 꼽힌다. 공식적인 통제를 싫어하는 신세대 신입사원들은 세대 차이를 느끼는 상사보다는 세대차가 거의 없는 멘토와 교류를 더 좋아하기 때문. 실제로 상당수 미국 기업에서 멘토제가 도입된 후 신입사원의 조기 퇴사율이 낮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멘토제라는 공식 명칭이 붙어 있지 않았을 뿐, 한국 기업에도 비슷한 문화나 관행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도제식 교육 과정에서 신입사원에게 배정되는 '사수'가 일종의 멘토인 셈이다.

하지만 N세대의 조기 퇴사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과거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멘토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사수라는 말이 군대 용어인 데서 알 수 있듯, 기존의 사수제는 또 다른 수직적 위계질서일 따름이라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이태규 연구위원은 "지금 우리 기업에 필요한 것은 수평적 멘토제"라고 말한다. 요즘 세대들은 예전 세대가 '참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것과 달리, 수직적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여영 기자

▶멘토제: 기업 조직에서 후배 사원들을 일대일로 후견하는 선배 사원을 정하고 서로 교류하도록 하는 프로그램. 후견인 격인 선배 사원을 멘토(mentor)라고 하고, 후배 사원을 멘티(mentee)라고 한다. 유명한 그리스의 서사시 '오딧세이아'의 주인공인 오디세우스가 10년간의 트로이 전쟁 후 고향에 돌아가 보니, 친구인 멘토가 자신의 아들 교육을 성실히 수행했다는 데서 멘토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N세대(미국의 경우, Y세대):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말에 태어나 지금 20대 중후반인 젊은이들. 인터넷 환경에 익숙하다는 의미에서, 네트워크(network)의 머리글자를 따 붙였다. 대개 핵가족의 구심점이며 상당수가 외동이다. 대부분 대학 교육을 받았고, 해외 경험도 구세대보다 많다. 어디서든 뭔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할 만큼 개성을 중시하고, 이는 뭐든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변화에 잘 적응하는 대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참지 못하는 특성도 강하다.

▶베이비붐세대: 한국 전쟁 후에 태어난 이들은 N세대와 달리 대부분 가난을 경험했다. 회사 생활을 통해 신분 상승을 경험한 만큼 조직에 대해 맹목적일 정도로 충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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