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 뻔한 민자 장미빛 공약/허남진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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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비무장지대에 평화시가 건설되고 김포∼순안간 비행노선을 비롯,남북간 뱃길이 트이고 단절상태의 각종 철로·도로가 복구돼 그곳을 통해 실향민들의 고향방문과 가족 재회가 실현된다. 고속도로를 비롯,간선도로 확충 공사도 20년간 지속적으로 실시,전국이 조만간 1일 생활권에서 반나절 생활권으로 단축된다.
소비자물가는 5%선으로 안정되며 주택보급률은 2001년에 93%를 기록,무주택 설움도 씻게 됐고 농업생산기반 정비를 위해 농촌지역에 향후 10년간 총9조5천억원을 쏟아붓는등 농촌도 살기좋은 곳으로 변한다.
18일 민자당이 14대 총선에 지시키 위해 확정,발표한 공약내용들 들여다보노라면 그 장미빛 청사진에 활홀감마저 느끼게 된다. 1백80개 과제별로 정치·경제·사회·문화등 전분야를 총망라,집권여당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나 이 공약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경제부문의 경우 정부의 7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며 몇몇 실현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도 적지않다.
매년 50만채씩 짓겠다는 주택건설정책을 비롯한 개발공약이 그렇다.
연간 50만채건설은 이제 우리경제여건상 그리 부담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2백만호를 앞당겨짓겠다고 무리를 범해 부실공사를 낳고 부동산투기를 불렀다. 무슨 개발공사니해서 천정부지로 땅값을 올려놓아 「6공 토건 정권」이라는 말도 나오는 판인데 이번에도 지역개발 공약을 보면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는건 빈말인 것 같다.
우선 되고보자는 식으로 도로포장·공단건설을 마구 뿌려대고 있다.
이같은 과열개발이 곧바로 물가로 연결될게 불을 보듯 뻔한데도 소비자물가는 5%선에서 안정시키겠다고 한다. 연말에 계수를 조정해 눈가림으로 한자리수 지키는데 안간힘 쓰는 판에 5%물가는 지나친 허구다. 물가불안을 야기시킨 경제실정을 저질러놓고도 무책임한 공약을 낼 수 있을까. 금융실명제는 그 무책임 경제정책의 단적인 예다.
13대 대통령선거에 공약으로 내놓았다가 경제적 혼란때문에 정부·여당 스스로 유보시켰던 공수표를 또다시 내놓는 저의는 무엇인지 묻지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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