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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권에선 벌써 종부세 부담 세입자에 떠넘겨

중앙일보

입력

“월세 물건이 많은데, 월세로도 괜찮으시겠어요?” 전셋집을 구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돌아온 부동산중개자의 대답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과 도곡동 등 국내 최고가 아파트 밀집지역에 월세 물건이 부쩍 늘었다. 집주인들이 부유세 증가 부담을 덜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타워팰리스와 동부센트레빌 등 고가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대치ㆍ도곡동 일대 중개업소에는 집주인들이 월세를 놓아 달라고 의뢰한 물건이 넘쳐나고 있다. 중소업소마다 줄잡아 10여건이 넘고 평수도 30평형대부터 60평형대까지 고루 분포돼 있다.

대치동 우성공인 김영환 사장은 “양도세 부담 때문에 매도를 하지 않는 대신 전세로 임대를 놓던 집을 월세로 전환하거나 보유 중인 주택을 월세로 놓아 보유세를 충당하려는 집주인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집주인들 “전세보다 월세가 더 좋아”

대치동 삼성래미안 33평형을 갖고 있는 김모씨는 지난달 초 이 아파트를 4억5000만원에 전세로 내놨으나 최근 보증금 1억원, 월 240만원의 조건에 월세로 전환했다. 김씨는 “전세보증금은 일정기간 후 돌려줘야 하고 딱히 활용할 곳도 없다”며 “대출 이자나 세금 부담을 월세로 줄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강남구 역삼동에서 32평형짜리 아파트 전세로 사는 유승환(43)씨는 얼마 전 3주택자인 집주인에게서 계약기간이 끝나는 5월에 월세로 전환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유씨는 “다시 전셋집을 알아보려고 중개업소 몇 군데에 들렸더니 ‘싼 월세 물건이 많으니 월세를 고려해보라’는 중개업자의 권유가 많았다”며 “집 주인들이 전세보다는 월세가 보유세를 내는 데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때문에 월세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집주인들이 월세를 원하는 것은 세 부담에 대비할 수 있는 데다 저축 이자보다 낫기 때문이라는 게 현지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도곡동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다주택 보유자 가운데 종부세 등 늘어난 세금 부담을 덜기 위해 월세로 돌아서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며 “특히 뚜렷한 소득이 없는 노령층 중심으로 월세로 재산세를 충당하고 임대소득도 얻으려는 움직임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물건 많은 데 수요 적다 보니…월 임대료 약세

월세 물건은 늘고 있지만 수요는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게 현지 부동산업계의 설명이다. 도곡동 석사공인 관계자는 “월세가 많이 나오기는 하는 데 세입자 입장에선 주거비 부담이 적은 전셋집을 더 원해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치동 명지공인 송명덕 사장은 “세를 놓는 입장에서는 월세를 좋아하지만 임차인들은 아직까지 월세 부담을 꺼리는 형편”이라며 “더욱이 강남권의 경우 전셋값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데 굳이 월세로 사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공급과 수요 불균형 심화로 월세는 약세를 보이고 있다. 대치동 우성2차 32평형(매매호가 8억5000만~9억5000만원 선) 임대료는 보증금 1억원에 월 100만~120만원 선으로, 한 달 전보다 월세가 20만원 가량 빠졌다.

은마아파트 34평형도 올 초보다 월세가 10만~20만원 내려 100만원 선(보증금 1억원 기준)이다. 도곡동 타워팰리스1단지에선 최근 68평형이 보증금 2억원, 월 임대료 590만원을 받겠다는 물건도 등장했다. 한 달 전보다 월세가 50만원 이상 빠진 것이다. 하지만 이 가격에도 월세로 들어오겠다는 수요는 많지 않다.

대치동 현대공인 관계자는 “집주인들의 월세 선호 현상이 뚜렷해질수록 월세 물건 소화불량 증세는 더 심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엔알컨설팅 박상언 대표는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는 사례가 급증할 경우 전반적인 전세 물건 부족으로 안정세에 접어든 강남권 등 일부지역 전세시장이 불안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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