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례 구조요청 외면 불법체류 中동포 凍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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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불법 체류자 단속을 피해 다니던 40대 중국동포가 서울 도심에서 동사(凍死)한 채 발견됐다. 이 중국동포는 숨지기 직전 112, 119에 전화로 구조를 요청했으나 아무런 도움을 못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9일 오전 5시20분쯤 서울 종로구 혜화로터리 부근 도로변에서 중국동포 金모(46)씨가 숨져 있는 것을 환경미화원 金모(55)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발견 장소는 경찰 순찰지구대에서 20m 떨어진 곳이다.

숨진 金씨의 휴대전화에는 오전 1시15분부터 4시25분까지 112와 119에 모두 14차례 전화를 건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오전 1시50분쯤 접수된 112 신고 녹취록에 따르면 金씨는 "추워 죽겠는데 힘이 없어 집에 못 간다. 종로 4가 창덕궁 쪽으로 가는 길"이라고 알렸다. 경찰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근처 공중전화에서 다시 전화 걸 것을 요구하다 4분여 만에 통화가 끊겼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관은 "金씨가 중국동포인 줄은 몰랐고, 횡설수설해 술취한 행인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술에 취한 金씨가 길거리에서 잠을 자다 숨진 것으로 보고 사인을 조사 중이다.

金씨는 2000년 7월 밀입국한 뒤 공사장에서 일해왔으며 지난 2일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강제추방 반대 농성을 하다 빠져 나온 뒤 소식이 끊겼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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