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벌판서 한국판 서부극 찍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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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가장 미국적인 장르인 웨스턴(서부극)을 한국 토종으로 찍을 수 있을까. 그러면서 찾아낸 게 일제시대 만주라는 배경이에요. 딱 떨어진다 싶었죠. 그런데 알고 보니 이미 선배 감독들이 찍은 '만주 웨스턴'이 있는 거에요.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1971년), 신상옥 감독의 '무숙자'(68년), 구봉서씨가 나온 '당나귀 무법자'(70년)…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임권택 감독의 영화도 있다고 해요. 그 덕분에 용기를 얻었지요. 할 수 있겠다고."

신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촬영개시를 코앞에 둔 김지운 감독(43.사진)을 만났다. 약칭 '놈놈놈'으로 불리는 이 영화는 내년 초 개봉예정인데도, 지난해부터 충무로에 소문이 자자했다. 만주를 무대로 한국형 서부극을 찍는다는 대담한 발상, 그 장본인이 공포.코미디.느와르 등 장르를 섭렵하며 평단과 관객을 고루 만족시켜온 김지운 감독이라는 점이 단연 화제였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서부극에서 살짝 빌려온 제목은 외국영화인들도 단박에 그 컨셉트를 알아차리게 했다. 이후 확정된 캐스팅도 놀랍다. 송강호.이병헌.정우성. 그야말로 쉽게 꿈꾸기 힘든 '드림팀'이다.

영화의 배경은 일제가 만주를 강점한 30년대 중반. 난세를 틈타 마적단이 득실대고, 극동을 노린 서구 열강의 대결도 한껏 고조된 시기다. 시각적 표현이 한결 다채로워질 요소다. "마적단들이 노략질한 물건을 과시하는 인간들이라, 동양과 서양이 고루 섞일 거에요. 말타고 달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오토바이도, 지프도 나와요."

세 주인공은 마적단의 열차털이범(송강호), 마적단원이자 살인청부업자(이병헌), 현상금 사냥꾼(정우성)이다. 이들 사이에 청나라 때 감춰둔 보물지도가 등장하면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는 얘기다. 제목대로 분류하자면 이 순서대로 이상한 놈, 나쁜 놈, 좋은 놈이지만, 예단은 금물이라는 게 감독의 말이다.

"누가 좋고, 나쁘고, 이상한 지는 국면에 따라 변화하게 됩니다. 겉만 보면 다 나쁜 놈일 수도 있지요. 일제치하에서 고향을 떠나 만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세 남자가 살아가려고 발버둥치는 얘기입니다."

총 제작비가 140억 원. 자연히 사전준비도 남다르다. 주요 액션장면은 디지털기술로 미리 동영상 콘티를 준비했다. "마지막의 대규모 추격장면은 거의 모든 등장인물과 고난도의 촬영기법이 동원돼요. 그래서 완벽한 사전 비주얼을 만들었어요. 중국이나 미국 스태프와는 통역을 통해 일을 해야하니까 더 준비를 해야죠."

항공촬영이나 플라잉캠촬영같은 일부 기법에는 할리우드 스태프를 활용할 생각이다. 촬영은 국내 분량을 먼저 찍고, 6월부터 둔황 등 중국 내륙 세 곳에서 총 6개월간 진행할 예정이다.

"대륙을 이곳저곳 돌아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지도의 저 위쪽이 트여있었다면, 과연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 마음이 어느 장면엔가 실리겠죠."

촬영준비 과정의 고됨을 김감독은 "블록버스터를 만들어온 감독들에게 경외감을 품게 됐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렇게 힘들다가도 세 배우와 드넓은 대륙에서 촬영할 생각을 하면 가슴이 설렙니다."

글=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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