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력배양이 정신대치욕 씻는 길|이상태<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심곡2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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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우리의 역사에서 정신대사건만큼이나 우리 민족의 자존심에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치욕을 안겨준 예는 없을 것이다.
가해자인 일본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을 은폐하며 발뺌해오다가 여기저기서 미처 인멸하지 못한 결정적 증거들이 나오자 마지못해「겉치레 사죄」를 하면서도 정작 이에 대한 정확한 진상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응분의 배상에는 뻔뻔스럽게도 한일청구권협정을 구실로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 우리 정부는 정부대로 소위「김-오히라 메모」로 발목이 잡힌 이래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사실 가해자인 일본 스스로 그 잘못을 참회하면서 사죄하고 배상한다 해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마음에 내키지 않는 억지 사죄와 배상을 받아낸들 피맺힌 통한의 치욕을 얼마나 씻을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돌이켜보면 일본은 우리나라의 결정적인 도움으로 고대문명을 이룩한 이래 우리가 베푼 문화적 은혜에 대하여 끊임없는 침략으로 보답해봤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점에서 일본의 침략근성을 탓하기 이전에 오히려 우리의 국력이 허약했기 때문에 이러한 비극이 초래된 것임을 깨닫고 자기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국세가 기울었던 고려말에 왜구는 창궐했고 당파싸움으로 국력이 소모되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남들이 근대화할 때 내분만 일삼고 외세에 의존하다가 결국 나라까지 빼앗기지 않았던가.
그때마다 얼마나 극심한 민족적 비극이 반복되었던가. 어찌하여 우리는 수치스런 역사를 되풀이하여 왔는가.
이제 우리는 겉치레 사죄나 배상을 받아내는 것보다 훨씬 긴요하고도 근원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다시는 정신대와 같은 수치스런 오욕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각자 오늘날 만연하고있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독선·아집에서 벗어나 줏대를 가지고 대동 단결하여 국력을 키우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이것이 정신대문제에 임하는 오늘의 우리들이 깨우쳐야 할 진정한역사적 교훈일 것이다.
특히 요즈음과 같이 대일무역 적자가 엄청나게 늘어가고 왜색 문화가 가정에까지 무분별하게 범람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 교훈의 의미가 더욱 절실하다.
이미 경제대국의 단계를 지나 정치·군사대국화의 길에 들어선 일본이 세계를 향한 패권주의의 조짐을 나타내 보이는 오늘의 상황을 볼 때 우리의 경제·문화·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의 심각한 대일 의존도 내지 대일종속화 현상은 아주 걱정스럽다.
좋고 나쁜 것을 막론하고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습성을 가진 우리들이지만 결코 정신대의 뼈아픈 역사적 교훈만은 잠시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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