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유전쟁] 13. 패배의 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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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내가 치른 '우유전쟁' 의 전 과정을 다 밝히려면 끝이 없어 이번 회에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1988년 7월 13일 공정거래위원회는 "파스퇴르의 광고 내용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위반, 소비자가 사실을 오인(誤認)할 수 있으므로 광고를 중지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나는 공정위의 시정명령에 불복, 서울고법에 소송(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그러자 공정위는 나를 춘천지검 원주지청에 고발했다.

이에 앞서 강원도는 파스퇴르유업의 유산균 발효유에 대해 1개월 제조 정지처분을 내렸었다. 보건사회부 위생국이 파스퇴르 요구르트의 광고를 "약광고로 오인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데 따른 후속 조치였다. 이 건에 대해서도 나는 강원도를 상대로 서울고법에 제조정지처분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내놓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고법에서 패소한 뒤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기각됐다. 경제기획원(현 공정위)을 상대로 낸 가처분신청은 90년에야 판결이 났는데 내가 패했다. 소비자보호원과의 법정 싸움에서도 졌다. 이런 식으로 나는 88년부터 92년까지 국가 기관과의 송사 일곱건 모두에서 패했다.

나의 유일한 승리는 중앙일보와의 싸움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뒷얘기가 있다. 나는 평소 소송 문제를 도맡아주던 변호사를 찾아가 중앙일보 고소 건을 의논했다. 그런데 그는 "아무리 변호사 수임료를 많이 줘도 맡을 수 없다"며 머리를 저었다. 실망한 나는 가까운 사람들과 이 일을 상의했다.

"변호사도 인간이다. 무슨 배짱으로 그 막강한 신문을 적으로 만들려고 하겠느냐. 어리석은 생각이니 단념하라." 한결같은 충고였다.

그러던 중 법조계 사정에 밝은 누군가가 박두환 변호사를 찾아가 보라고 알려줬다. 실낱 같은 희망을 안고 朴변호사를 찾아갔다. 내 설명을 들은 그는 "수임료는 상관 않고 반드시 이기도록 해보겠다"며 흔쾌히 승낙했다.

89년 초 법원은 중앙일보에 대해 "파스퇴르유업에 대한 사과문과 정정기사를 3회 게재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가 거의 모든 법정 싸움에서 패배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저온살균우유 시장은 점점 커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93년 무렵 국내 유명 유가공회사 두곳에서 저온살균우유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두 회사 모두 저온살균우유라는 표현은 전혀 쓰지 않았다. 그들이 저온살균우유라는 사실을 알리거나 말거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드디어 우리나라 우유가 저온살균우유 시대로 가는구나, 그 과정에 나의 보잘것 없는 힘이 도움이 됐다는 자부심만으로도 지금까지의 고생에 대한 보상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두 회사는 3년쯤 '최고급 우유'를 판매하더니 어느 날 슬그머니 생산을 중단해버렸다. 다시 초고온멸균우유 시대로 되돌아간 것이다.

최명재 파스퇴르유업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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