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막론 재력과시 경쟁/총선공천(정치와 돈:8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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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자 14대신청자 자금능력 평균 20∼30억 자랑/주간연재
여야는 모두 돈 안드는 선거운동을 입버릇처럼 외고 있고 정부도 금권선거를 차단하겠다고 서슬퍼렇게 나서고 있다.
그러나 여야가 요즘 한참 벌이고 있는 14대총선 후보공천심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야가 돈 더 쓸수 있는 후보를 고르자는게 아니냐는 의혹을 야기하는듯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여야가 공천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기반진술서 또는 자금동원진술서를 요구하고 있고 공천희망자들은 공천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있는 재산,없는 재산을 몽땅 기재하는 경쟁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술서라고 하니까 경찰서 냄새가 나지만 정반대로 자기홍보를 하는 서류다. 여야 가릴것 없이 공천신청자들은 공직자 재산등록처럼 이 재산명세서를 내도록 되어있다. 다른점은 현보유재산뿐만 아니라 동원가능한 현금까지 밝히라는 요구다.
민자당이 마련한 안내문을 보면 『재산상황은 구체적으로 기입하라』고 적혀있다.
예를 들어 ▲동산=예금 ○○○원,유가증권 ○○○원,▲부동산=대전시 유성 대지 ○○○평 ○○만원,강원도 철원 임야 ○○○평 ○○만원,서울 강남구 아파트 ○○평 ○○만원 등이다.
자금동원능력 예시를 보면 ▲친형님 홍길동(조선그룹 회장) ○○○원 ▲처삼촌 김이박(백제회사 대표) ○○○원 ▲후원회(회장 △△△) ○○○원 등으로 확실한 「증거」를 대라는 것.
그러나 이는 모범답안일뿐 「돈」 문제는 민감한 것이어서 대부분은 큼직큼직한 액수만 적는다.
민자당 공천신청자 7백19명이 써낸 평균 동원 가능한 재산액은 얼추 20억∼30억원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들중에는 서민이 보자면 천문학적 숫자를 과시하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등장.
서울 송파을의 김병태 지구당위원장(상도동계)은 청와대로부터 「낙하산」을 타고 내러오려는 곽순철 대통령민정비서관과의 경쟁에 자극받은 탓인지 기반진술서에 ▲동산 1백20억원 ▲부동산 2백60억원 ▲자금동원능력 25억원이라고 큰소리.
원래 재력가인 김위원장을 놓고 당주변에선 『더 됐으면 더됐지 과대포장은 안했을 것』이라고 촌평하는 정도다.
마산을에 도전장을 낸 「거부스님」 손영모씨(38)도 1백억대 재산가를 자처해 화제가 됐다.
서울 신사동 혜인선원(신도 1천8백여명) 주지인 손씨는 ▲동산 10억원 ▲부동산 87억원 ▲동원가능 15억원이라고 또박또박 적었는데 『모두 스님재산이냐』는 질문에 『출가하기전부터 고향 마산에 땅 10만평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
스님을 잘 안다는 몇몇 사람들은 언론에 이같은 사실이 보도된후 신문사로 『스님이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부인하는 항의성 전화를 해왔고 손씨도 『액수는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로비하는등 주변 여론에 신경을 쓰기도 했다.
이처럼 주목받는 1백억원대이상 재산가는 여야에서 줄잡아 수십명에 달하지만 대부분은 고개가 끄덕여질만한 수준.
경북 모지역에 신청한 의원보좌관출신 C씨는 ▲현금 3천만원,유가증권 5천만원 ▲경북 ○○군 초전 3천평 10억원,○○군 산 1만평 5억원 ▲동원가능=4촌사업가 ○○○씨 1억원,사업가 장인 2억원,동문 및 후원회 1억원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당관계자들에 따르면 대부분은 후보가 부풀려 써넣는다는데 이는 당지도부의 눈길을 끌기위한 방편인 것같다고 분석.
13대 공천심사를 담당했던 모씨는 『실제로 50억원이상 적혀있는 서류는 다시한번 쳐다보게 되더라』고 실토했다.
공천가능권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의 진술내용은 액수가 많건 적건 그냥 넘어가지만 2∼3배수안에만 들어도 관계기관이 실사작업을 벌이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내용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자금능력과시에 관한한 야당도 결코 뒤지지 않아 가끔 깜짝 놀랄 액수가 등장.
경북지역에 조직책을 노리는 A씨는 참신한 이미지에 맞게 선전비·인건비·차량비 등 기본경비로 선거를 치를 생각이라고 해놓고서도 후반부엔 학연·지연·혈연 등으로 일정자금을 조달하되 특히 처가(건물·토지 등 5백억원대 재산가)의 적잖은 지원이 예상된다고 토를 달아 놓았다.
또 과천­의왕에 신청한 L씨는 경쟁자 K씨를 놓고 비교표까지 만들어 「여당의 금권·관권선거에 대비해 조직 가동 및 홍보를 위한 자금은 이미 확보되었음」이라고 명시해 「실탄장전완료」를 과시했다.
당료출신 L씨는 아마도 야당의 평균수준일 것으로 보이는데 ▲동산 1억원(통장 2개·기타 가용재산) ▲부동산 봉천동 단독주택 3억원,시골땅 3천평 1억원 ▲증권 3천만원 ▲기타 후원회지원 3억원 등 8억원 정도로 진술해 놓았다.
기반진술서 또는 자금동원진술서는 정당이 후보신청을 위해 필요한 자료이고 선거운동을 하는데 돈이 드는거야 부동의 사실이지만 접수창구에 나타난 「재력과시 경쟁」은 금권·타락선거를 방조·부채질한다는 지적이 매섭다.
공명선거실천운동협의회 간사를 맡고 있는 경실련의 장신규 정책실장은 『정부·여당은 정부차원에서 돈안드는 선거를 치르겠다고 선전하고 야당은 야당대로 침이 마르도록 여당의 금력정치를 비난하면서 돈있는 후보를 고르는데 치중하는 모습은 자기기만이자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실장은 『일반서민은 평생 1억원을 모으기도 힘든데 10억·1백억원이라는 숫자가 마구 등장하는 것은 위화감을 조성할 우려가 있다』며 『당선가능성중에 자금능력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겠지만 기반진술서식의 자료수집방법은 개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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