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움직임만 봐도 고장 알죠-철도기관차 정비 이길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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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철도청 종사자들에게는 교통수송량이 폭증하는 주말이나 휴일·명절 등이 가장 바쁘고 긴장되는 때다. 각종 정비 및 수리·선로보수·전기시설 점검 등 까다롭고 숨막히는 작업들이 시시각각 벌어지고 조그마한 실수가 엄청난 사고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서울기관차사무소 검수계장 이길원씨(51)는 이처럼 중요한 철도교통의 보수책임을 24년 동안 맡아오면서 철도동력차 정비부문에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4만 철도인은 물론 전 공무원 중에서도 처음으로 명장에 선정된 인물이다.
열차의 정비과정에서도 우리에게 흔히 기차역·지하철 선로에서 망치·드라이버·찌 등을 들고 다니며 간간이 기관차 바퀴나 선로를 두드리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이 바로 「검수」, 그러나 철도검수는 망치만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우선 기관부문이 앞서고 전기부문도 중요하다.
이씨는 이 검수과정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인 기관차 정비부문 최고의 기능인으로 인정받았다. 『의사가 몸이 아픈 환자를 대하는 것과 검수인이 열차를 대하는 심정이 같다고 할까요. 소리도 들어보고 두드려도 보며 아픈 곳을 찾게 되지요.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정성을 쏟다보니 물리를 튼 것뿐입니다. 차고에 들어오는 움직임만 보고도 이상 있는 곳을 어림짐작할 때가 있습니다.』
61년 경기도 미금시의 지금은 폐교된 도농축산기술학교를 졸업한 그는 군무를 마친 뒤 67년 철도청 검수수로 임용된 후 검수원→수장→계장을 거치는 동안 공직자로서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표창을 휩쓴 모범공무원이자 행운아. 84년 대전기능경기대회 우승 등 각종 기능경기 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전동차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긴 하지만 차체결함으로 운행이 중단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입니다. 특히 최근 연발된 사고는 남의 일 같지가 않아요. 그러나 사고는 대부분 노후차량에서 발생합니다. 기술축적만은 세계적이라는 것을 믿어주셨으면 합니다.』 『선진국의 경우 열차수명이 15년 이상 넘어가는 사례가 없는데 국내의 경우 40∼50년짜리 노후차량도 많아 사고위험이 매우 높은 실정』이라고 지적하는 그는 노후차량일수록 확인·수리절차가 많아 인력·경비소요가 크다며 새 차량으로의 대체가 시급하다고 했다.
『첨단과학장비가 부족한 실정이어서 대부분의 열차 검수과정에서 시각 외에도 청각·촉각까지 동원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선 눈으로 부품의 균열이나 이완을 찾고 청각으로는 엔진·계기의 탁음을, 촉각으로는 미세한 진동을 감지해 이상 유무를 확인합니다. 그러나 요즘의 철도사고 규모를 감안한다면 「육감」에만 의존하는 것은 예기치 못한 사태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서울·부산 등 5개 지방철도청의 복지시설이 임용초기보다 상당히 향상됐다고 평가하는 이씨는 그러나 『4만 명의 철도청 종사원 중 60∼70%에 이르는 철도청 기능인들이 아직도 각종 소음 등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한다』고 현실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배유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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