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사회 풍자…관객들 매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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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극작가 박재서씨가 기구한 인생류전의 피맺힌 한을 짧은 극작 활동을 통해 왈칵 토해놓고 떠나갔다.
오랜 투병 끝에 13일 타계한 박씨는 강렬한 사회 풍자를 질펀한 욕설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내뱉던 독특한 존재로 기억된다. 그만큼 그의 삶과 극작 활동은 모두 강렬하다. 그는 41년 춘천에서 태어나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를 나온 뒤 연세대 국문과에 진학, 「연희극회」에서 배우로 활동한다. 그러나 집안 사정으로 중퇴한 뒤 그의 기구한 삶이 시작된다. 직물 회사 경리사원으로 시작해 빵가루 공장 사장, 출판사 외판원, 동대문시장 옷가게 주인까지 전전하지만 어느 하나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45세의 중년이 돼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천직인 극작을 찾았다.
85년 『팽』으로 시작된 그의 작품은 『고시래』 『AD313』 『하느님 비상이에요』등으로 쏟아져 나오며 매번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얼어붙은 시대 분위기를 녹이는 듯한 풍자는 실험적 양식과 함께 관객을 사로잡았다. 10여편의 토막극인 『고시래』는 당시 서릿발같던 공륜의 사전 심의에 걸려 수차례 수정되고 연출가가 각서를 쓴 뒤에 공연될 수 있었다.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의 사랑을 다룬 『AD313』에서는 전쟁이 「욕설」이라는 폭력으로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작년에도 재 공연된바 있는 『하느님…』에서는 전도사 부부의 속물적 근성이 극중극·인형극·마당극 등 다양한 형식으로 전개돼 객석을 사로잡는 힘을 보여준다.
한참 그의 인기가 오르기 시작하던 86년에는 동시에 네 편의 작품이 공연돼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의 폭발적인 극작 활동도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좌절된다. 대전에서 자신의 공연을 보고 돌아온 그가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후 다소나마 의식을 회복한 그는 퉁퉁 부은 손으로 펜을 잡아 극작에의 집념을 응축한 희곡집 『박재서 희곡선』을 지난여름 내놓았다. 책을 내놓은 뒤 삶의 굴레를 벗은 듯 갑자기 병세가 악화돼 오랜 고행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유족은 미망인 한옥천씨와 2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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