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총리 방한에 거는 기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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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일 수뇌외교가 있을때면 항상 그랬던 것처럼 두나라 사이의 과거사가 그림자를 드리운 가운데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일본 총리가 16일 방한한다.
그의 방문은 당초 다분히 의례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서 예정된 것이었지만 이제는 그 이상의 각별한 의미를 갖게됐다. 단순히 한일 두나라 사이의 관계개선과 강화 뿐 아니라 앞으로의 한반도 주변정세는 물론 아시아 전반의 정세추이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의 방문 시점은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당초 그의 방한이 구상됐을때 예상못했던 소련의 완전해체에 따른 새로운 질서와 남북한관계의 급진전과 같은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때마침 일본의 국제적 위상과 역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일본 스스로 정치·군사적으로 적극적 역할을 맡으려는 의지를 여러방면에서 내보이고 있는 탓이다.
우리가 이와 관련해 일본에 대해 갖는 관심은 각별하다. 한일 두나라가 그동안 가져온 정치·경제면에서의 특별한 관계라든가,한반도의 장래문제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한일관계의 장래는 이미 지난 몇차례의 두나라 수뇌회담에서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다짐하며 약속해왔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번 미야자와 총리의 방한에서는 그 구체적 실천방안을 논의하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번 기회 역시 원론적인 차원에서만 논의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미 두나라사이에 큰 문제로 부각돼왔던 무역불균형 시정문제라든가 기술협력문제 등은 아직도 몇년전과 같은 수준에서 우리쪽의 일방적인 요구사항으로만 그치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한한 일본측은 단순히 경제적인 논리에서 구조적 문제로만 파악하려 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일방적으로 누적되기만 하는 무역적자의 해소방안으로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정부가 어느정도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 적어도 어느정도까지는 개선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우리로서는 이미 약속된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일본정부는 이번 미야자와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좀더 과감하고 성실한 태도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그러한 현실문제와 아울러 우리로서는 이번 미야자와 총리의 방한이 과거사를 정리하는 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정신대문제로 일본 총리가 사죄의 의사를 비치기는 했으나 그것이 단순한 임기의 방편이나 형식적인 수사로 끝나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계속 대두되는 것은 우리로서 일본사람들의 의식 밑바닥에 과거사를 합리화하려는 생각이 깔려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심을 털어버리지 않고는 설사 이번 기회에 정신대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두고 두고 과거 역사문제는 두나라사이의 앙금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마침 이번 방문을 계기로 일본 총리로는 처음 우리 국회에서 연설할 예정으로 있다. 그 기회를 빌려 허심탄회하고 솔직한,우리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청산의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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