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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young파워] 세계적 학회서 '젊은 과학자상' 박나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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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사진=강정현 기자]

"우주에 어떤 입자가 있는지 이해하는 게 곧 우주항공 산업의 시작입니다. 성과를 인정받아 얼떨떨하면서도 기뻐요."

지난달 19일부터 24일까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과학실험 장치에 관한 빈 국제회의(Vienna Conference on Instrumentation)'에서 'NIM(Nuclear Instruments and Methods in Physics Research) A 젊은 과학자상'을 수상한 박나희(29.사진)씨. 그는 28일 수상 소감을 한국의 우주항공 산업의 미래와 연결시켰다. NIM A는 가속기, 분광계, 센서, 검출기 등 첨단 대형 과학실험 시설에 대한 논문을 싣는 저널로 이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학술지다.

이화여대 물리학과 박사과정 4년차인 박씨는 2004, 2005년 두 차례의 남극 체류 실험을 통해 얻은 우주선(宇宙線.우주에서 지구로 들어오는 에너지)의 입자에 관해 분석한 논문으로 유럽 CERN 연구소의 X L 쿠디 박사와 공동 수상자에 선정됐다. 이번 수상은 전 세계 천체물리학계의 내로라 하는 학자들이 제출한 250여 편의 논문을 제친 성과였다.

박씨는 2004년부터 남극에서 초대형 풍선(크림)을 이용한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선 측정 실험에 참여했다. 당시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두 차례나 미국.이탈리아 과학자들과 함께 남극에 파견됐다. 남극 체류기간만 80일이 넘었다. 박씨는 남극에서 지도교수인 양종만 교수팀이 개발한 실리콘 우주입자 성분 검출기를 거대한 풍선에 실어 원격제어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번 논문은 그때 이후 줄곧 수집해 온 데이터와 회수된 검출기를 분석한 결과다. 박씨는 이번 학회에서 100여 명의 천체물리학자 앞에서 초청 강연(plenary talk)도 했다. 그는 "세계적인 전문가들 앞에서 25분 동안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자신을 "뒤늦게 공부 운이 트인 경우"라고 말한다. 부산에서 자란 박씨는 별자리를 좋아해 천체관측소의 공개 관측 행사를 놓치지 않고 찾았다. 박씨는 "공부를 잘하면 무조건 의대에 가는 분위기가 싫었다"며 "대학에서는 진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물리학을 전공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박씨가 천체물리학에 매료된 것은 졸업을 앞둔 대학 4학년 때였다. 취업과 대학원 진학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에게 '우주입자 성분 검출'라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그때부터 박씨는 하루 14시간 이상을 연구실에서 보냈다. 지금도 그는 "14시간도 짧다"며 "연구에 더 '올인'해야 한다"는 각오로 실험실을 지키고 있다. 부모님이 "이제 그쯤 공부했으니 취직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그에겐 꿈이 있다. 일차 목표는 항공우주 연구의 선두주자인 미국의 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하는 것이다.

"아직 한국은 일본이나 미국.유럽에 비해 천체물리 분야의 연구가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언젠가는 우주의 신비를 밝혀낼 수 있는 일을 한국에서도 마음껏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박씨의 힘 있는 목소리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이런 박씨를 6년 가까이 지켜본 양 교수는 "주위의 도움을 안 받고도 혼자서 독자적인 연구 분야를 개척해 가는 제자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글=박수련 기자 <africasun@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 빈학회(VCI:Vienna Conference on Instrument)와 NIM A=1978년 첫 회보를 발간한 이 학회는 핵물리.천체물리.생물학.의학 등에 응용되는 과학기기의 원리 및 실험방법에 대한 대표적인 국제학회다. 폴란드계 프랑스 물리학자 샤르팍(Charpak) 교수(199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가 초창기 입자 검출기(와이어 챔버 검출기)를 개발해 낸 뒤 열린 학술회의가 모태가 됐다. NIM A는 이 학회의 회보가 실리는 첨단 과학실험 시설 관련 전문잡지다. 네덜란드 엘시비어(Elsevier) 출판사가 발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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