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해외칼럼

이란 핵문제도 외교로 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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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제사회가 북한 핵개발 프로그램의 폐기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대단한 성과다. 어려운 경제사정과 에너지에 대한 절박한 필요가 북한으로 하여금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그러나 동시에 이번 합의는 외교적 협상의 이점과 효과를 다시 한번 입증한 것으로, 이런 방식은 이란과의 협상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이란 핵개발 프로그램의 심각성을 지나치게 과대 평가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나는 이 같은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핵무기 보유가 곧바로 그것의 사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인정한다. 지난 15년 동안 지구상에 8개의 핵 보유국이 등장했지만 1945년 이후 실제로 핵무기가 사용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이란이 아홉 번째 핵보유국이 될 경우 중동지역은 물론 전 세계의 안보 상황에 커다란 변화가 불가피하고, 국제사회에 공포와 불신이 확산할 것이란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무력에 의존하는 방법은 전혀 현실적이지 못하다. 이란에 대한 핵공격은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이슬람권이 단합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재래식 무기를 이용한 공격도 불가능하다.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은 이스라엘이 지상군을 투입하기도 어렵고, 대다수 미군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발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만일 국제사회, 특히 미국이 외교적 협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 방법을 확고하고 철저하게 밀고 나간다면 성공은 보장될 것이다. 가능한 협상 틀은 68년 체결된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제공하고 있다. 이란은 초기에 NPT 체제에 가입한 국가 가운데 하나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도 30년 이상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 관계가 훼손된 것은 불과 3년 전의 일이다. 현재 효율적 협상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은 이란과 중재역을 자처한 독일.영국.프랑스 등 유럽 3개국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심이다.

미국과 유럽 3개국의 최종 목표는 이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폐기다. NPT 조약은 핵무기를 포기하고 IAEA의 완전하고 조건 없는 감시를 받는 회원국은 전력 생산과 같은 핵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보장받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란이 민수용으로 핵을 개발하는 것은 NPT 회원국으로서 당연한 권리다. 단지 서방의 우려를 없애기 위해 이란의 평화적 핵 이용권을 박탈하려는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 우라늄 농축이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첫 단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핵무기 제조를 위해선 우라늄을 95% 정도까지 농축시켜야 한다. 이는 에너지 생산에 필요한 농축도(약 3.5%)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이다. 세계의 과학자들과 IAEA가 두 가지 형태의 핵 활동을 구분하는 지표나 기준을 제공할 수 없단 말인가.

게다가 이란 정부가 공개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도 없다. 오히려 이란은 몇 번이나 IAEA 사찰을 수용하고, 국제 협력을 통해 민수용 핵 프로그램을 수행하겠다고 제안해 왔다. 지금까지 서방은 모든 우라늄 농축 활동은 핵무기 개발과 연계돼 있다는 전제 아래 이란의 제안을 모두 거부했다. 이 같은 태도는 아무리 봐도 잘못된 것이다.

NPT의 원칙을 충실히 따를 경우 우리는 이란과도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란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닌 진짜 의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미셸 로카르 전 프랑스 총리·현 유럽의회 의원

정리=유철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