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고홍주씨 성공 비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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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 해럴드 홍주 고(48.고홍주)씨가 미국 최고의 법률대학원 예일대 로스쿨 학장에 임명된 것은 두고두고 감동을 더한다. 재미동포 가운데 죽자고 땀흘려 재력(財力)으로 성공한 경우는 많지만 지력(知力)으로 미국 사회의 최고봉에 오른 경우는 드물다. 미국 이민 1백년사에 최대의 뉴스가 아닐 수 없다.

홍주씨는 제주도가 배출한 세계적 법학자 고광림(高光林)박사의 3남이다. 부친은 경성제국대학을 나와 서울법대에서 영어와 법률사상사를 강의하다 1949년 미국에 건너가 6년 동안 정치학(럿거스대학)과 법률(J D 보스턴) 및 법학(S J D 하버드 로스쿨) 등 박사학위 3개를 따낸 준재다. 60년 장면내각 출범 때 주미공사로 임명돼 대리대사를 하다 5.16혁명이 나자 미국으로 망명했다.

예일대학의 배려로 부인 전혜성 여사와 예일 로스쿨에서 한동안 '동아시아법과 사회'를 강의했고, 케임브리지에 한국연구소를 세워 하버드 및 예일에서의 한국학 연구에 기초를 놓기도 했다. 89년 사망 때 예일 로스쿨 강당에서 장례식이 열렸지만 국내 언론은 한두줄 부음으로 처리해 법사학의 권위 최종고(서울법대)교수는 한국 언론의 무식을 개탄한 적도 있다.

홍주씨는 미국에서 태어나 하버드 정치학부를 수석 졸업하고 마셜장학생으로 옥스퍼드대학원에서 그 유명한 P P E(정치.철학.경제)과정을 마쳤다.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면서 최고 수재들만 가는 대법원판사 서기직을 맡았고, 예일대 로스쿨 교수와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 다시 예일대 강단으로 돌아와 오늘에 이르렀다. 미국 사회의 '노른자'코스만 골라서 밟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그의 성공은 그의 선친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부친은 예일과 코네티컷주립대 등을 전전하면서 6남매를 모두 명문대학에만 보내 변호사.의사.교수로 만들었다. 그는 "개인이나 국가나 위대한 성취는 한 세대에 이루어지기 어렵다. 몇세대, 수십대를 두고 공을 쌓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61년 뉴헤이븐에 둥지를 튼 후 40여년 만의 공든 탑이 오늘의 홍주씨다. 아이를 서둘러 미국에 보내고 기러기아빠가 돼 돈만 보내는 오늘의 조기유학이 얼마나 무모한가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홍주씨의 성공은 인종이나 출신을 떠나 실력과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최고봉에 오를 수 있다는 미국 사회의 장점을 그대로 웅변한다. 아메리카는 국가라기보다 '하나의 아이디어'라고들 한다. 혈통.문화.관습이 다른 온갖 인종들을 법과 시스템이라는 하나의 틀 속에 넣어 공존공영을 도모한다. 이는 곧 인류가 지향하는 이상(理想)이요, 아메리카는 그 실현과정이라는 얘기다.

미국 과학기술계의 고급 두뇌는 석사급은 29%, 박사급은 38%가 이미 외국계다. 게다가 가난한 체코의 이민 소녀가 국무장관(매들린 올브라이트)이 되고, 망명 한국인 2세가 '법률가의 나라' 미국 최고 로스쿨의 학장이 되는 사회다. 이라크 전쟁 등 이런 저런 악재로 미국이 '악의 상징'으로 지탄받는 현 상황에서 홍주씨의 성공은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홍주씨는 얼마 전 런던의 한 초청특강에서 미국은 역사상 최고의 초강국이면서도 자신의 안전을 위협받는 '아킬레스 건'을 가진 취약한 나라임을 지적하고, 글로벌 문제는 일방주의보다 글로벌 협력으로 풀자고 역설했다. 힘과 함께 보편적 원칙, 특히 좀더 넓은 문명(wider civilization)과의 공유를 주창한 대목이 더없이 신선하다.

변상근 논설고문